항목 ID | GC012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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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容直不忘碑 |
영어의미역 | Yi Yongjik's Monumental Stone |
이칭/별칭 | 수사이공용직만세불망비(繡使李公容直萬世不忘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67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재관 |
성격 | 금석각류|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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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일반형 비석 |
건립시기/일시 | 1868년 |
관련인물 | 이용직 |
재질 | 오석 |
높이 | 131㎝ |
너비 | 43㎝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675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조선 말 이용직의 선정비.
[건립경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용직은 1868년(고종 5)에 경상도암행어사가 되어 현재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부근에 있었던 역원인 죽현원의 폐단을 시정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도록 해주었는데, 이를 기려서 비석을 세웠다.
[위치]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선산휴게소 인근 마을 내 담장 모서리에 세워져 있다.
[형태]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가 없고, 비석의 윗부분이 직각으로 되어 있는 직수(直首) 형태의 비신만 남아 있다. 비신은 높이 131㎝, 너비 43㎝, 두께 13.5㎝이다. 비석은 민가 담장 모서리에 세워져 있으며, 비문 등은 마멸이 심하지 않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수사이공용직만세불망비(繡使李公容直萬世不忘碑)’라 되어 있고, 비문은 지용국(池龍國)이 짓고 오한영(吳翰泳)이 썼다. 왼쪽 측면에 ‘동치칠년계무진팔월일(同治七年季戊辰八月日)’이 각자되어 있어 이 비가 1868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 앞면의 ‘수사(繡使)’는 수의(繡衣), 또는 직지(直指)라 불린 암행어사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암행어사는 지역에 내려갈 때 선문(先文)을 사용하지 않고 미복(微服)으로 암행하여 수령의 행적과 백성의 억울한 사정 등 민정을 자세히 살펴, 필요할 경우에 출도하여 그 신분을 밝힌다. 비위(非違), 탐오(貪汚) 등 수령의 잘못이 밝혀지면 그 죄질에 따라 관인을 빼앗고 봉고, 파직하여 직무 집행을 정지시킨다.
또 임시로 형옥(刑獄)을 심리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민정을 살피는 역할을 하였다. 비록 이용직 불망비가 민가의 담장 모서리에 세워져 있으나 왕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보살폈던 암행어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라 중요한 유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