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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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洛成里 |
영어음역 | Naks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노수천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낙성리는 앞고을, 서원, 창마, 중리, 금석(김싯골, 짐수골), 장터, 아곡, 압골 등 여덟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앞고을은 해평현 동헌이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서원은 17세기 중반 세워진 낙봉서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창마는 해평현 때에 병기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중리는 마을 중앙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금석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왕비 해량원부인의 출생지로서 신라시대에 금맥이 발견된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는 조선시대에 여관인 사가원이 있던 곳으로, 마을이 상가 위주로 형성되어 장터라고 한다. 아곡은 옛날 파징현 관아가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향교와 사창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옆에 있는 못을 아곡지라 한다. 압골은 마을 앞이 파징현 동헌 터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해평면 소재지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1.65㎢이며, 총 403가구에 1,072명[남 545명, 여 52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낙성1리와 낙성2리 두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7개 자연마을로 구성된 낙성1리는 해평면 중앙부 미석산 매봉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고, 낙성2리는 국도 변에 인접한 시장이 형성된 곳으로 주로 상인들이 거주한다.
해평면 주봉인 매봉에서 변고가 있을 때나 가뭄이 들었을 때 제사를 지내며, 장터에서는 시장 중간쯤에 있는 뽕나무 앞에서 매년 정월 보름 동제를 지내다가 지금은 도리사에 맡겨 지내고 있다. 창마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 날이 밝을 무렵에 오곡으로 지은 찰밥과 과실·어포 등의 제수를 마련하여 둘레 5.5m의 느티나무에 동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2호로 지정된 낙봉서원이 있다.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에 세워져 1787년(정조 11) 사액되었고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31년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 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여 춘추로 향사를 한다. 김숙자(金叔滋)·김취성(金就成)·박운(朴雲)·김취문(金就文)·고응척(高應陟)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 유서 깊은 해평향교 터가 있다. 관련 기록으로는 『일선지(一善誌)』 고적 조에 “선산부 해평 고을에 관아 및 향교, 사창 등 옛 터가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해평향교는 고려시대에 해평현이 선산군에 속하게 된 뒤 폐하였다가 조선 초기에 고을 사람들이 옛 터에 향교를 세울 것을 청하여 선산부사 이길배가 조정에 알려 다시 세웠다.
그 후 “한 고을에 두 개의 향교는 자고로 그 예가 없다”하여 폐하려던 차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병화로 훼철되었다. 1608년(선조 41) 현인이 부사 성보선에게 청하여 그곳에 서당을 세웠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