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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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Museums in Eumseong, linking past with present and future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영택 |
[개설]
박물관이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나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밖의 학술적 자료를 모아서 보관하고 진열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시설이다. 국제박물관회의(ICOM)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공개 전시함을 목적으로 이룩된 항구적 공공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은 음성 지역 천주교의 상징인 감곡성당의 110년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매괴박물관과 (주)한독약품이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1964년에 문을 연 한독의약박물관, 철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는 철박물관, 짚과 띠풀을 이용한 전통 짚풀공예품을 제작하고 전시하고 있는 심당짚공예연구소 등이다.
[감곡성당 11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매괴박물관]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매괴박물관은 1896년에 설립된 감곡성당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934년에 완공된 충청북도 최초의 석조 건물인 사제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매괴박물관은 1층과 2층 5개의 전시실에 서적 및 가톨릭 관련 유물 등을 포함하여 약 80여 점 정도로 꾸며져 있다. 감곡성당은 1896년에 설립되어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천주교 성당으로 본당 설립 100주년이 되던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1. 매괴박물관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감곡성당의 역사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감곡성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신부 부이용(任加彌, Camillus Bouillon)이다. 부이용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미리내에서 한국의 풍습과 언어를 공부하였으며, 첫 본당으로 신학당이 있던 여주 부엉골(부흥골)에 발령을 받았다. 당시 본당 사목지가 산지에 있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부이용은 장호원에 갔다가 산 밑에 있는 대궐 같은 집을 보게 되었다.
부이용은 본당 사목지로 그 곳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다. 당시 부이용이 부엉골로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기도를 올리며 탐을 냈던 대궐 같은 집(현 매괴학교 운동장)은 명성황후의 육촌오빠 민응식의 109칸짜리 집이었다.
또한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사실 당시에 민씨 문중에서 집을 팔려고 내놓기는 했는데, 워낙 비싼 값이라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불과 1년 4개월 만인 1896년 5월, 부이용은 민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던 집 터와 산을 온전히 매입하고, 그 해 9월 17일 본당을 이전한데 이어 매괴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면서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는데, 장호원 지역에서는 의병들이 민응식의 109칸 집을 점거하자 일본군이 의병들을 몰아내면서 집들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결국 그 덕분에 집 터와 산을 싼 값에 매입할 수 있었다. 부이용은 불타고 남은 한옥을 수리하려고 했다가, 이것이 여의치 않자 12월 5일에 원래 집의 기초를 이용하여 사제관과 소성당을 완공하고는 점차 신자들의 수가 증가하자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으로 이듬해 9월 사제관과 구성당을 한식과 양식을 절충하여 세우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 성모께 약속한 대로 성당 주보를 ‘매괴의 성모’로 삼고 1904년 10월 2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감곡성당의 관할 공소는 경기도의 여주·이천 일부와 충청도의 단양·제천·충주·음성·괴산·진천·보은·청주 그리고 경상도 북부 등지에 산재해 있었다. 한편, 부이용은 1907년에 지방민을 교육하기 위해 초등학교인 매괴학당을 설립하였다. 또한 1930년 10월 7일에는 건평 200평, 종각 높이 130여 척의 고딕 연와조의 현 대성당을 신축하였고, 이와 함께 남은 석재로 1934년 3층의 석조 사제관과 학교 교사를 새로이 신축하였다.
1943년 7월 부이용은 연합국인 프랑스 사람이란 이유로 서울 용산신학교에 연금되어, 장금구(莊金龜)[크리소스토모]와 유영근[翰注, 요한] 신부가 각각 본당의 2,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어렵게 사목 활동을 이어 나간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자, 부이용은 제대 밑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게양하고 누구보다 먼저 광복의 기쁨을 알리기도 하였다.
1947년 10월 25일 부이용이 선종하자 박고안(朴稿安)[프란치스코]이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후 1953년 감곡성당이 메리놀 외방전교회에서 관할하는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로 설정됨으로써 그해 9월 파(巴, Janmes Pardy)가 메리놀회 신부로는 처음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하여 1958년 6월 청주교구가 설정되기 이전까지 감곡성당은 서울교구로서 경기도 여주와 이천 일부 지역, 충청도의 청주·괴산·충주·진천·보은·제천·단양, 경상도 북부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이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냈던 감곡성당은 유구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96년 본당 설립 100주년이 되던 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2. 매괴박물관의 전시 현황
모두 다섯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는 매괴박물관의 제1전시실에는 감곡당 설립 당시의 한국 천주교 개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감곡성당의 발자취라는 코너에는 주교 요지 1부와 신구약 성서 필사본 1부가 전시되어 있으며, 매괴학교의 개교와 변천과 관련된 자료 7점이 유물과 함께 모형도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제1전시실에는 대성전이 완공된 후 프랑스 루르드에서 주조하여 종탑에 안치한 세 개의 종, 곧 벨라뎃다와 데레사, 마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종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이 세 개의 종들은 대성전과 함께 감곡 지방의 명물로 유명하였다. 발과 손을 이용하여 종 끝에 매달린 줄을 당기면 세 개의 종이 각각 자신만의 음을 내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었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 말기 쇠붙이 공출이 강제로 이루어지면서 대성전의 종들도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었다. 1945년 8·15해방 이후 본당 신부와 신도들은 이 종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들의 노력과 정성 덕분에 대성전의 종은 본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제1전시실에는 옛 성당의 목판 대문과 1960년대 당시의 감곡(장호원)의 옛 전경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는 대촛대 8점을 비롯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만행을 담은 사진 자료와 십자고상 11점, 테레사 종 1점, 고해성사대 1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실은 성체거동 전시실로서 성체거동의 사진 자료와 정합, 성작, 성반 각각 1점, 봉성체용 성합 3점, 성수체 4점, 성유통·성광 각 1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성체 보호용으로 햇볕을 차단하는 데 쓰였던 일산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일산기는 큰 쪽의 가로 길이가 53㎝·세로 길이 172㎝, 작은 쪽의 가로 길이 53㎝·세로 길이 133㎝로 네 쪽이 모두 조각 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4전시실은 메리놀 사목시대 전시실이다. 1957년 제품인 소형 환등기 1점과 1966년 제품인 소형 환등기 2점 그리고 1963년에 사용하던 영사기 1점과 탁상시계 1점, 성체 거동 관련 유물 3점, 가스등(1953년) 3점, 와사등(1953년) 2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메리놀회 사목시대 여러 신부들의 패널 사진 1점, 청주교구 설정과 사목 패널 사진 1점을 포함하여 메리놀회 본단 사목 패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5전시실에는 주로 감곡성당과 관계 깊은 신부와 수녀들의 패널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역대 본당 출신 수녀(81명) 사진과 본당에 교적을 두었던 신부 6명을 포함한 역대 본당 출신 신부(28명) 사진, 역대 한국인 본당 신부(13명) 사진, 역대 메리놀회 본당 신부(5명)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황과 역대 교주 사진도 함께 전시되고 있으며, 전시실 한 켠에는 성가대용 풍금 1점과 감곡성당 건축사 관련 책자인 『감곡본당 90년사』, 『감곡본당 100년사』, 『감곡성당 건축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의학과 의약의 발자취를 담아낸 한독의약박물관]
(주)한독약품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1964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에 문을 연 한독의약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박물관이자 의약 전문 박물관이기도 하다. 국가보물 6점을 포함하여 의약 분야와 관련하여 보존 가치가 높은 약 1만 여 점의 사료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약 9천여 권의 의약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의약도서실도 함께 갖추고 있어 연간 1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고 있다.
1. 전시실로 보는 한독의약박물관의 모습
한독의약박물관은 전시실과 수장고, 강당, 약초원, 의약도서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전시실은 1,410㎡ 규모로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1층에는 외국의 의약 자료를 전시해 놓은 국제관과 한독약품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독사료실(한독사료실), 김신권 명예회장의 기증유물 전시관인 제석홀(제석홀)이 있고, 2층에는 우리나라 의약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한국관(한국관)이 들어서 있다. 이외에도 330㎡ 정도의 수장고와 300석 규모의 현대식 강당, 3,300㎡ 규모의 약포와 302㎡ 규모의 온실로 이루어진 한독약초원 등이 있다.
현재 한독의약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1만여 점에 이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꼽히는 것이 한국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의약기(醫藥器)인 청자상감상약국명합(靑磁象嵌尙藥局銘盒)과 국내 유일본인 『의방유취(醫方類聚)』,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여섯 점이다. 이들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관에는 이외에도 약을 빻을 때 사용하는 약연과 약맷돌·약절구 등의 약연기(藥碾器)류, 약을 달일 때 사용하는 약탕기(藥湯器)류와 탕제(湯劑)를 담거나 따를 때 사용하는 약주전자, 약잔 등의 약성주기(藥盛注器)류가 있다. 또한 약을 저장할 때 사용하는 약합·약상자·약궤·약주머니 등의 약장기(藥欌器)류는 물론 한의학의 또다른 치료기구인 침구(鍼灸)류, 약을 만들 때 사용하는 약틀·약볶기 등의 제약기(製藥器)류 등 다양한 한의약기를 전시하고 있다.
외국의 의약 관련 자료를 모아 놓은 국제관에는 황옥어시문약잔(黃玉御詩紋藥盞)을 비롯한 중국 의약 자료와 약증류기(藥蒸溜器) 등의 일본 의약 자료, 티벳 약상자 및 분동 같은 동남아시아 의약 자료를 포함하여 외과 수술 도구 등의 서양 의약 자료가 있다. 그리고 19세기 독일의 전통 약국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독일 약국 모형과 실제와 동일하게 복원해 놓은 플레밍 박사 연구실도 국제관의 주요 전시물로서 빼놓을 수 없다.
기업 박물관이기도 한 한독의약박물관에서는 한독약품의 역사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 한독사료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독사료실에는 주권과 메달, 약연, 뱃지, 로고, 초창기 생산품 등을 통해 우리나라 제약업 발전의 사례를 실감나게 살피게 하였다. 2006년 5월 16일 한독제석재단 출범과 함께 문을 연 제석홀은 창업주인 김신권 명예회장의 아호를 따서 지어졌고, 이를 기념하여 김신권이 기증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유물들은 청자상감국화모란문표형주전자 등을 비롯한 청자류, 백자양각한시명병 등의 백자류 및 분청자박지봉황문자라병 등의 분청자류와 같은 도자기류 등이다. 이 뿐만 아니라 먹감나무 약장, 금강저 및 금강령, 동종 등과 같이 토기, 목기, 청동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4개의 전시실 외에 박물관의 1층과 2층 로비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금동약사여래상뿐만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상 외에도 2백 종 가량의 생약 표본, 서양의 약전류 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야외 전시장에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오층석탑과 맷돌류 등의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철과 관련한 모든 곳이 있는 철박물관]
원자기호의 Fe는 라틴어 ‘ferrum’에서 유래된 것인데, 명칭에 대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영어의 ’iron’은 광석을 뜻하는 라틴어 ‘aes’로부터 나왔고, 독일어의 ‘Eisen’은 철의 광택이 얼음과 유사하여 얼음을 뜻하는 ‘Eis’에서 유래된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이 같은 철에 대한 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자라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철의 중요성과 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다양한 체험 학습 등을 운영하고자 건립한 곳이 바로 철박물관이다.
철박물관을 만든 곳은 우리나라 현대 철강산업의 시초이기도 한 동국제강이다. 동국제강은 1991년 8월 28일 재단법인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제철기술과 제철기술 발달이 인류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하여 1992년 10월 철박물관 건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충분한 검토와 타당성 검증을 통해 1996년 1월 철박물관 건립을 착공하게 되며, 1998년 8월 3일 2년여의 공사 끝에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 97번지[영산로 360]에 철박물관을 준공하였다. 철박물관은 총 면적 9,900㎡ 규모의 부지에 본관과 전시실, 세미나실, 유적 복원관, 대장간, 게스트 하우스, 분재원, 공예공방 등의 시설을 갖추고 약 2,500여 점의 철 관련 자료들을 전시·운영하고 있다.
1. 전시실로 보는 철박물관의 모든 것
철박물관은 크게 실내 전시장과 야외 전시장, 야외 도검장 및 대장간, 분재원, 교육관, 게스트 하우스 & 예술인 작업실로 이루어져 있다. 실내 전시장을 살펴보면, 먼저 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등을 알아보기 쉽게 전시해 놓고 있다. 특히 ‘철에도 종류가 있나요?’, ‘조선 낫에 감춰진 비밀은?’, ‘철과 자기, 떠 있는 공, 철제 의류’, ‘한번 입어 볼까요?’, ‘대장간 모형’, ‘제강은 어떻게 하나요?’, ‘인류의 철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철을 어디에 썼을까요?’, ‘강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등의 소제목을 달아 철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전기를 이용하여 강철을 만드는 제강로인 전기로, 아크열을 이용하여 고철과 생석회가 반응하여 분리된 불순물을 담는 용기인 슬래그 박스(Slag Box), 여러 가지 고철, 강철에 전기를 통하면 강한 자성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자성을 이용하여 고철을 운반하는 데 사용하는 전기 마그네트(Electric Magnet) 등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제강 공정에서 무거운 용구(레이들, 슬래그박스, 턴디시 등)를 천정기중기로 옮길 때, 용구와 기중기를 연결하는 쇠로 만든 걸이인 후크(Hook), 전기로에 만들어진 쇳물을 연속 주조 공정으로 옮기는 용기인 레이들(Ladle), 쇳물을 레이들에서 몰드 튜브에 직접 주입하면 쇳물의 흐름과 온도의 조절이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몰드 튜브에 주입하기 전에 쇳물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턴디시(Tundish), 턴디시 분출구를 통과한 쇳물을 모양과 크기에 따라 냉각하여 반제품으로 성형하는 곳인 몰 튜브(Mold Tube), 철의 반제품, 연속 주조에서 만들어진 반제품을 가열하여 회전하는 롤 사이를 통과하면 완제품이 되는데 이때 롤과 롤을 고정시켜 압연기의 뼈대가 되는 압연 롤 스탠드(Roll Stand)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울러 시끄러운 공장에서 신호로 작업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던 ‘작업용 타종’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야외 도검장 및 대장간은 전통 제철 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92.16㎡ 규모의 대장간은 전통 제철 체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전통 철은 106.25㎡ 규모의 야외 도검장(정평)에서 전통 검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또한 2006년 1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7년 1월 준공한 분재원의 연 면적은 495.45㎡로 60년 이상 가꾸고 수집한 분재 260여 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분재 중에는 수령이 40년에서 300년 이상 된 소나무 분재를 비롯하여 향나무, 단풍나무, 소사, 주목, 연산홍 등의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 철박물관은 무슨 일을 할까?
철박물관의 주요 사업은 뭐니뭐니해도 제철과 관련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 활동의 하나로 철박물관에서는 2002년부터 충주시 앙성면 야철지 학술지표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경주 용곡댐 수몰지구 제철유구 이전 복원 및 보고서 발간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2006년 5월에는 미래의 학술적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몰 위기에 처한 제철유구의 해체 및 이전·복원 작업을 실시하였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박물관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철박물관에서는 박물관 문화학교를 열어 음성군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철 문화교실로 해마다 관내 초등학교 4~6학년생 80여 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고대 철 문화의 이해를 통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하고, 현대의 제철 및 제강 공정을 파악함으로써 근대화·산업화의 근간이 되었던 철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외에도 20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칠보공예 교실’을 연 2회 운영하고 있으며, ‘어린이 공예교실’을 열어 지역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예술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로 하여금 전통 제철과 단조 및 주조 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철의 생성과 원리를 깨우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05년부터 ‘어린이 전통 제철 및 철기 공방 체험 교실’을 철박물관 대장간에서 열고 있다. 아울러 종합 예술 구현 장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국내 작가들을 초대하여 ‘철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IRON & ART's 심포지움’을 여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심당짚공예연구소]
음성군 맹동면 쌍정2리에 있는 심당짚공예연구소는 2002년 12월 20일 노동부장관으로부터 짚공예 기능전승자로 인정받은 강태생이 설립한 우리나라 유일의 짚공예연구소이다. 총 694.22㎡ 규모의 부지에 198.35㎡ 규모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적인 농경 생활과 관련한 3백여 점의 짚 공예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장승과 바디 등 나무 공예품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심당짚공예연구소의 전시실은 보통의 박물관 전시실과는 달리 설립자인 강태생의 작업실이자 전시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쪽은 강태생이 직접 화문석이나 돗자리 등을 짤 수 있는 작업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의 공간은 그동안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실인 셈이다.
전시실로 이용되는 공간에는 지개등받이와 망태, 곡식동이, 소신, 맷판, 도롱이, 동구미, 종다래끼 등 짚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생활용품들이 전통 방식 그대로 제작·전시되어 있어 한눈에 보아도 농경사회 속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공예 재료로 쓰이는 장표풀, 인동덩쿨, 닥껍질, 부들풀, 호밀짚, 왕골초(속), 줄풀, 뙤풀, 조리풀 등과 함께 상주 머리에 쓰던 ‘수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초가지붕 위에 얹던 ‘용마루’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심당짚공예연구소 설립자인 강태생은 짚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멍석부터 돗자리, 화문석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짚공예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화문석이나 돗자리 가마니를 짤 수 있는 틀인 바디를 손수 제작하여 쓸 정도로 솜씨가 탁월하다고 한다. 강태생은 최근 들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맥간공예’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맥간공예란 보리짚을 이용하여 밑판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문양을 붙인 뒤 그 위에 옻칠을 하여 마치 나전칠기나 자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공예작품을 말한다.
또한 일선 학교의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고, 심당짚공예연구소를 방문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교육생에게는 직접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동안 심당짚공예연구소에서 짚공예 교육을 받은 사람만 3천여 명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충청북도 교육감상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에는 음성군민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