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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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幣帛 |
이칭/별칭 | 현구고례(見舅姑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혜숙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신부가 혼례를 치른 후 처음으로 신랑의 부모를 비롯해 친인척에게 드리는 인사.
[개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서 폐백(幣帛)이란 조선 시대 예서(禮書)에서 ‘현구고례(見舅姑禮)’라 칭하는 의례에 해당한다. 혼례가 신부 집에서 치러지던 시기에는 폐백을 신랑 집에서 행했으나, 196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전문 예식장이 들어서고 서구식 결혼식이 일반화되면서 현재는 예식장에 마련된 별도의 폐백실에서 폐백이 이뤄진다. 또한 전통혼례를 치르거나 교회나 성당, 강당과 같이 전문 예식장이 아닌 곳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에도 신랑 집이 아니라 대개는 예식 장소에 임시 폐백실을 설치한 후 결혼식 당일 그곳에서 폐백을 올리고는 한다. 혼인의 형식, 폐백의 장소와 절차, 폐백 음식의 종류 등은 변화하였으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현재 동작구에서의 폐백은 높은 비율로 실행되는 보편적인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절차]
폐백은 원래 신부가 시아버지에게는 밤과 대추를, 시어머니에게는 단수(腶脩)라는 육포를 쟁반에 담아 올리며 첫 인사를 드리는 예식이다. 따라서 절을 올릴 때 신랑은 참여하지 않고 대개 신부가 친정에서 마련해 온 음식을 상에 올리고 혼자 절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술은 집안에 따라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했다.
흑석동에서 3대째 거주하고 있던 한금용[1915년생, 남]이 25세 때 22세의 신부를 맞이했을 때를 보면, 혼례 후 신랑 집에 온 신부만 안방에서 시댁 어른들께 폐백을 드렸다. 폐백음식으로는 친정에서 떡과 닭고기, 밤, 대추를 고리짝에 담아와 상을 차렸다고 한다. 당시 신부가 절을 올렸던 순서는 조부모, 시부모, 일가친척 순서였고,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을 던지며 아들, 딸 낳고 잘 살라고 덕담을 한 것은 시어머니였다.
한편 혼인 시기는 한금용보다 5년 정도 빠르지만, 17세에 동갑내기 신부와 혼인한 흑석동 거주 이재선[1918년생, 남]의 사례는 현재 행해지는 폐백과 오히려 비슷한 점이 있었다. 신부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에서 폐백을 거행한 것이나 폐백음식으로 삶은 육포 대신 닭에 대추와 밤을 붉은 실로 꿰어 장식한 것을 쓴 것, 또한 부모가 대추와 밤을 신부의 치마폭에 던지며 덕담을 하는 절차는 공통적이었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서서 함께 폐백을 올렸고, 부모에게 먼저 절을 올린 후 조부모에게 절을 올렸다는 점에서 한금용의 사례와는 차이가 났다.
한편 현재의 폐백은 집에서 올릴 때와 절차는 비슷하지만, 수모의 주도와 설명에 따라 폐백이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예식장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신부 집에서 형편에 맞춰 장만해가던 폐백음식은 현재는 예식장 또는 전문업체를 통해 구매하여 쓰고 있는데 닭보다는 육포를 쓰는 비중이 높아졌고, 신랑의 부모와 친인척 뿐만 아니라 신부의 부모에게도 절을 올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되었다. 또한 폐백 때 절을 받은 시부모를 비롯하여 친인척 어른이 신랑 신부에게 절값이라 하여 돈봉투를 주는 것도 달라진 풍속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