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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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果州 |
이칭/별칭 | 부안(富安),부림(富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오기승 |
제정 시기/일시 | 940년 - 율진군에서 과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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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018년 - 과주를 광주목에 예속 |
개정 시기/일시 | 1069년 - 과주를 경기에 예속 |
개정 시기/일시 | 1284년 - 과주 관내 용산처(龍山處)를 부원현(富原縣)으로 승격 |
개정 시기/일시 | 1390년 - 과주를 경기좌도에 예속 |
폐지 시기/일시 | 1413년 - 과주에서 과천으로 개칭 |
관할 지역 | 과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본동|흑석동|동작동|사당동 |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북쪽과 동쪽 부분에 해당되는 노량진동, 흑석동, 사당동을 포함한 지역을 관할하는 고려 시대의 지방행정구역.
[개설]
과주는 고려 초기에 설치된 행정구역으로서,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노량진동, 흑석동, 사당동과 더불어 서초구 일부와 용산구 일대, 그리고 현 경기도 과천시와 군포시 일대 및 안양시 영역의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에 들어 후삼국을 통일하고 국가체제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940년(태조 23) 3월 주(州)·부(府)·군(郡)·현(縣)의 이름을 고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율진군(栗津郡)을 과주로 개칭하였다.
[관련 기록]
과주와 관련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권2, 세가2, 태조 23년 3월, 『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왕경 개성부, 『고려사』 권56, 지10, 지리1, 양광도, 『세종실록(世宗實錄)』148권 지리지, 경기 광주목 과천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0, 과천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내용]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940년(태조 23) 각 지역의 이름을 고치게 하면서 율진군을 과주로 개칭하였는데, 고려 성종 때 부안(富安)이라는 별호가 정해졌으며 부림(富林)으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과주의 명칭은 고려시대 전체를 거쳐 조선 건국 초기인 1413년(태종 13)의 읍호 개정 때까지 지속되었다.
[변천]
과주는 고려 전기 지방 통치 체제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1018년(현종 9) 광주목(廣州牧)에 속하게 되었다. 1069년(문종 23) 경기의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과주는 경기에 속하게 되었으며, 고려 예종이 처음으로 감무(監務)를 파견한 1106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지방관으로서 감무가 파견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284년(충렬왕 10) 과주의 영역에서 용산처(龍山處)를 떼어내어 부원현으로 삼았으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노량진동, 흑석동, 사당동 지역은 여전히 과주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1390년(공양왕 2) 경기를 다시 확대 재편하여 좌도와 우도로 나눌 때 과주는 경기좌도에 속하였으며,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2) 과천으로 읍호가 개정되면서 ‘과주’라는 명칭은 폐기되었다.
[의의와 평가]
인접한 금주(衿州)와 더불어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영역을 각각의 관할지에 나누어 포함하고 있다. 고구려 점령 시기의 명칭인 율목군은 옛 이름으로 밤나무골을 뜻하는데, 고려시대의 ‘과주’라는 명칭도 이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