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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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道洞營團住宅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대방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혜숙 |
소재지 | 상도동 영단주택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대방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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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주택단지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었던 주택단지.
[개설]
상도동 영단주택(營團住宅)은 1941년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이 동작구 상도동 일대에 건설하였던 단지형 집단주택으로, 조선주택영단이 주거지 계획에 따라 부지를 조성하고, 대규모 단지로 건설한 일정한 형태의 주택이다.
1930년대 후반, 조선총독부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주택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1941년 7월 1일 조선주택영단을 발족하였다. 이후 일정한 수준의 주택을 신속하게 대량으로 공급할 것을 목표로 하여 주택건설 4개년 계획을 추진한 결과, 조선주택영단은 광복 전까지 조선 내 18개 도시, 61만 평에 달하는 부지에 12,814호의 영단주택을 건설하였다.
영단주택은 기본적으로 넓은 마당, 무연탄을 사용하는 하나 이상의 온돌방, 목욕탕 또는 공동목욕탕, 실내 화장실을 갖추었으며, 기와지붕 등 일본식에 조선식이 가미된 외형을 지닌 건물이다.
건축의 효율성과 속도를 높이고자 당시 건축면적에 따라 갑형[건평 20평, 대지 60평 이상], 을형[건평 15평, 대지 45평 이상], 병형[건평 10평], 정형[건평 8평], 무형[건평 6평] 등 5종류의 기본 평면을 작성하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갑형 11종, 을형 10종, 병형 4종, 정형 2종, 무형 2종 등 총 29가지의 표준설계도가 마련되었다.
이 가운데 단독주택형인 갑형은 중상류층, 단독주택형 또는 2호 연립형인 을형은 중류층, 2호에서 4호 연립형인 병형은 중하층, 2호에서 8호 연립형인 정형과 10호 연립형인 무형은 하류층과 노동자 계층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러한 영단주택이 1941년 10월부터 1942년 9월까지의 1차년도 사업 기간 동안 상도동과 대방동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두 곳은 조선주택영단의 첫 사업지이자 택지조성공사 지역에 해당하며, 영등포공업단지의 배후 주거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일제 강점기 번대방정(番大方町), 즉 현재의 대방동에는 총 464호의 영단주택이 지어졌으며, 드물게도 갑형, 을형, 병형, 정형, 무형의 5가지 기본형이 모두 건설된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반면 상도정(上道町), 즉 현재의 상도동에는 도시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영단주택을 지었다. 당시 경성부가 토지를 일괄 매수하여 조성한 상도 영단주택지는 139,722㎡로 전국 최대 규모였다.
다만, 구릉지를 포함하고 있어 격자형 주택 배치를 구현할 수는 없었고 3개의 원형 로터리와 이를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를 내고, 기존의 수목(樹木)도 살려 주택을 건설함으로써 자연친화적 단지를 만들었다.
양호한 교외 주택지를 지향하였기에, 상도동 영단주택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큰 평형의 고급주택지가 주로 들어섰다. 갑형과 을형이 주를 이루었고 일부만 병형을 채택하여, 상도동에는 단독형 영단주택과 연립형 영단주택이 혼재하였다. 1942년 1차 493호를 비롯하여 1945년까지 상도동에 건립된 영단주택은 총 1,067호였다.
[현황]
광복 이후 일본인이 살던 주택의 경우, 한국인이 불하를 받아 살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영단주택의 일본적 특징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형태로 증개축되었다. 예를 들어 대문을 남향으로 옮기거나, 중복도를 마루로 개조하고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바꾸는 식이었다.
이후 상도동 영단주택지의 경우 1980년대 초까지는 건립 당시의 모습이 거의 유지되었으나 1980년대 초 도시계획이 실시됨에 따라 변화되었다. 상도동의 경우 로터리의 흔적만 남았을 뿐 지역개발로 인해 영단주택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