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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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혜숙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이뤄지는 식품의 생산, 조리, 소비와 관련된 활동 개관.
[개설]
동작구의 식생활은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서울, 경기 지역의 식생활과 큰 차이가 없이 영유되어 왔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1960년대 이후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서울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동작구 역시 다른 지역으로부터 이주한 수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였기 때문에, 동작구 지역의 식생활에서 고유한 특색을 찾기는 어렵다. 현재는 다른 도시 지역과 마찬가지로 농촌에 비해 공장제 식품이나 수입 식품 등의 이용, 외식업 의존도가 높으며, 김장, 장 담그기, 명절, 잔치 때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과 음식을 같이 만들거나 나눠 먹는 일이 적어졌다.
일제강점기까지 동작구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은 한강이었다. 이 시기까지도 노량진이나 흑석동 주민 가운데는 농업 이외에 민물고기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식생활 용구인 옹기를 구워 한강을 이용해 서울 시내로 반입하여 판매하는 이들이 있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옹기류는 육로보다는 배로 운반하는 편이 많은 양을 빠르게 운반할 수 있어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동작구 내에서도 특히 노량진에는 옹기 굽는 사람이 많이 살아서 옹막리(甕幕里), 옹점리(甕店里), 동이점 등의 마을이 있었다. 동이점은 노량진2동 45~46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로 1950년대까지도 옹기 굽는 가마 두 곳이 있어 떡시루, 독 등을 제작하였으며 노량나루를 이용해 현재의 강남 일대와 과천 주민에게 다수 판매하였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창고에 저장해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한강에 두껍게 언 얼음을 잘라다가 땅을 파고 돌로 쌓은 후 이엉으로 지붕을 얹어 만든 저장고에 왕겨를 깔고 넣어두었다가, 여름에 그 얼음으로 빙수 장사를 하거나 부잣집에서 음식의 저장 등에 이용하였다.
한편 조선시대 한강의 노량진과 동작진은 상인들이 어물을 팔던 곳이었고, 노량진에는 1970년대 초반까지도 어부가 200여 명 거주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한강의 노량진과 마포에는 조기젓배 등 어물배가 많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동작구민에게 민물고기나 해산물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구하기 쉬운 식재료였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까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노량진 주민의 밥상에 자주 올랐던 것이 조기젓이라고 한다. 이렇듯 어물을 구하기 쉬운 상황은 1975년 노량진수산시장이 이전하면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종사자 가운데 노량진동에 거주하는 사람이 상당한 노량진수산시장은 일반가정은 물론 요식업 종사자, 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 소매점 등에 각종 수산물을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동작구는 물론 서울시민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다만, 식구 수가 적은 현재는 집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양과 횟수가 줄어든 데다, 결혼, 돌, 환갑, 상례 등 각종 의례의 손님 접대를 뷔페 등 외식업체에서 치르면서 일반인의 수산물 구매는 줄어들었다.
[세시음식]
동작구의 세시음식에서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이는 주목할만한 특징은 없다. 설에는 떡국이나 만둣국, 전, 부침개, 떡, 과일, 잡채 등을 만들어 먹는데, 과거에 비해 가래떡을 준비하는 양이 적어졌다. 정월대보름에는 ‘보름밥’이라 하여 수수, 좁쌀, 팥, 콩 등의 여러 가지 잡곡을 넣어 지은 오곡밥이나 찰밥을 먹었고, 땅콩, 잣, 호두 등 견과류를 이용하는 부럼을 하였다. 2월 초하루에는 송편 모양의 나이떡과 볶은 검은콩을 시절음식으로 먹고는 했다. 4월 초파일에는 동작구 내 절에서 절을 찾은 신자에게 비빔밥, 떡, 과일 등을 내었고, 여름 삼복에는 복달임이라 하여 삼계탕이나 보신탕을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추석에는 송편, 각종 전, 나물 등을 준비하였고, 음력 10월에는 상달고사라 하여 팥시루떡으로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동지에는 주로 팥죽이나 팥떡을 먹고, 불교신자는 절에 가서 기도를 한 후 절에서 주는 팥죽이나 찰밥을 먹었다. 겨울을 앞두고 하는 김장은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깍두기 등 여러 종류의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데, 가족의 수가 많았던 시기에는 한 가정에서 100~200포기 이상의 배추로 김장을 했으나 현재는 30~50포기로 줄어들었다는 가정이 많다. 같이 살지는 않아도 자녀들과 함께 김장을 담가 나눠 먹는 경우에는 많은 양의 김장을 하기도 한다.
[라면과 컵밥]
6·25전쟁 이후 미국에서 들어온 대량의 원조밀가루는 한국인의 식생활에 변화를 가져왔고, 밀가루를 원료로 한 국수, 수제비, 빵, 인스턴트 라면, 밀가루 막걸리 등이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밀가루와 관련하여 동작구의 신대방동과 대방동은 국내의 라면 및 제과업 발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신대방동은 현재의 농심그룹[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이 1965년에 라면 사업에 착수한 곳인데, 농심은 1966년 1월 동작구 대방동에 대방공장을 준공하고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 10월 농심에서 개발한 ‘소고기라면’은 쇠고기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주효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라면이 식생활에서 중요한 식품으로 자리 잡는 데 견인차의 역할을 했다. 한편 1971년 11월 대방공장에 스낵공장이 준공되어 그 해 12월부터 새우깡을 생산하게 되었고 이어 각종 스낵을 출시함으로써 국내 제과업계의 발전을 대방동 공장이 줄곧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양과 안성에 새롭게 공장이 가동되면서, 동작구 소재 대방공장은 1986년 2월 문을 닫았다.
한편 동작구 노량진동에 형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고시촌에는 수험생을 주요 고객으로 한 음식판매업이 발달하여, 고시식당, 컵밥 등 식생활에서 특색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말, 대형입시학원의 이전을 시작으로 형성된 노량진 고시촌에는 현재 공무원 시험과 임용고시 등을 준비하는 공시·고시생이나 다양한 자격증 시험 준비생이 통학하거나 노량진동에 산재한 오피스텔, 고시텔, 공부방, 고시원, 하숙집 등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과 돈을 아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2000년대 중반까지는 분식집이나 떡볶이, 튀김, 토스트 등을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가 수험생을 상대로 성업하였다. 이후 포장마차에서 종이나 스티로폼 재질의 일회용 용기에 담아 볶음밥, 주먹밥, 덮밥류 등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컵밥’이 개발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컵밥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국내에서 편의점이나 대형 식품회사, 프랜차이즈 업소에서도 상품화되거나 해외로 진출하기도 했다. 2015년 노량진로 174에 ‘노량진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조성된 컵밥거리는 현재도 컵밥이나 폭탄밥 뿐만 아니라 쌀국수, 떡볶이, 순대, 튀김, 닭강정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고, 학원생만이 아니라 관광명소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