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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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華遺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백화유묵 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2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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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화유묵 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백화유묵Ⅰ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필사본 |
작가 | 傳 이광사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유묵첩.
[개설]
백화유묵(白華遺墨)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백화유묵Ⅰ도 그 중 1종이다. 경남 대학교 박물관 데라우치 문고에는 ‘백화유묵’이라는 이름의 첩이 2첩이 있다. 편의상 각 권을 백화유묵Ⅰ·Ⅱ라 칭한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백화유묵Ⅰ의 크기는 19㎝×16㎝이고 분량은 30쪽인 비교적 작은 서첩이다. 첩 안에는 각 면마다 다른 곳에 있던 글씨를 오려 붙인 중자(中子) 크기의 글자들이 각각 2자씩 쓰여 있으며, 마지막 6면에는 한 면에 한 글자씩 첩부되어 있다.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백화유묵Ⅰ에서는 이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주는 관지(款識)나 도서인(圖書印)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서체(書體)를 통해 이 서첩이 원교(圓喬)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내용은 『소학(小學)』 소제(小題)의 첫머리인 “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원·형·이·정은 하늘의 불변의 법칙이고, 인·의·예·지는 인간의 벼리가 되는 본성이다.]”와 중간부분의 “惟聖性者 浩浩其天 不加毫末 萬善足焉 衆人蚩蚩 物慾交弊 乃頹其綱 安此暴棄[성인은 천성이라 넓고 넓은 하늘이니 더할 것 없이 온갖 선을 갖추었지만 중인은 어리석어 물욕이 앞을 가려 그 벼리 무너뜨리고 자포자기해버린다]”라는 글귀를 해서체로 썼다. 마지막 6면에는 ‘如難然寧無悔’ 글귀를 마찬가지로 해서체로 썼다. 책 표지의 표제(表題) 옆에는 ‘上之卽阼二十七年騰置’라는 글귀가 있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이다. 글씨는 이서(李敍)[1662~1723]와 윤순(尹淳)[1680~1741]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광사만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圓喬體)를 완성하여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광사의 서체를 ‘동국진체(東國眞體)’라도 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이다. 정제두(鄭齊斗)로부터 양명학을 배웠으며 영조의 등극과 함께 소론이 실각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다. 1755년(영조 31)에는 소론 일파의 역모 사건에 연좌되어 전라남도 진도로 귀양 가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평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야인으로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에 치중하였는데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 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을 비롯하여 『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와 작품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