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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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南道昌原地區出張所 |
영어공식명칭 | Gyeongsangnam-do Changwon Branch office |
이칭/별칭 | 창원지구출장소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정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었던 출장소.
[설립목적]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창원공업기지 건설과 배후도시 조성에 필요한 행정 지원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74년 4월 1일 창원이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고시됨에 따라 마산시가 거대한 공업기지 건설에 필요한 지원 행정을 맡게 되었다. 경상남도는 지원 체계의 합리화를 위하여 별도 행정기관을 설립하고자 했지만 시 승격 기준인 인구 미달로 시청 설립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76년 7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공단의 효율적인 지원 체제 연구를 지시함에 따라 같은 해 8월 8일 임시 행정기관인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안이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경상남도 마산시 외동 458번지의 건물을 임차하여, 1976년 9월 1일부터 마산시 남부출장소 전역과 동부출장소 일부인 팔용, 상북 지역을 합한 총 109.85㎢의 행정구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개소 당시 소장과 부소장 아래 1담당관 2실 7과 29계 7지소(용지·성주·웅남1·웅남2·상북·팔용·삼귀) 1보건지소가 설치되었다.
1977년 10월 31일 당시, 공무원 정원은 총 222명(현원 213명)으로 본소에 164명이 배치되었고, 지소에 58명이 배치되었다. 직급별로 구분하면, 2급을(현 3급) 1명, 3급갑(현 4급) 2명, 3급을(현 5급) 18명, 4급갑(현 6급) 39명, 4급을(현 7급) 49명, 5급갑(현 8급) 62명, 5급을(현 9급) 26명, 고용직 25명 등이다.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의 1977년도 총 예산은 192억 1900만 원으로, 일반 회계가 11억 4900만 원(6%) 특별 회계가 180억 7천만 원(94%)이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관할구역 내의 종합 행정을 수행하는 경상남도의 일반 행정기관으로서, 도지사→출장소장→지소장의 지휘감독 체계를 갖었다. 사무 처리는 종래 마산시장 감독하의 사무를 포괄적으로 창원지구출장소장이 위임 받아 출장소장의 책임 하에 수행하였고, 소요 경비는 출장소장이 부담했다. 창원공업기지 건설 추진상의 문제점에 관한 관계 기관의 업무 협의 및 조정을 위해서 도지사를 위원장으로, 출장소장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행정지원조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였다.
[활동사항]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창원신도시 건설을 위한 기본적인 특성과 미래상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으로는 첫째, 국내 최초의 시범적인 새 공업도시, 둘째, 완전한 계획형의 현대도시, 셋째, 국토계획상 산업개발 거점 도시, 넷째, 공업단지를 핵으로 한 기간공업도시를 기본적인 특성으로 하였다. 미래상으로는 첫째, 국가 발전을 상징하는 도시, 둘째, 영남 중부권의 산업경제 중추도시, 셋째,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산업광광도시, 넷째, 녹색이 충만한 산업복지도시 등이 제시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이주민들의 강력한 집단 반발 속에서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주 2회 이상의 회의 속에서 이주비 지급의 현실화, 출장소에서 무상으로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주거 희망 이주지를 분양하고, 자녀 취업을 약속하는 등 간접 보상 대책을 마련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3년 7개월 동안 창원신도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공업기지 건설 83.5%, 배후도시 조성사업 44.5%라는 실적을 이룩하여 1980년 4월 1일 인공도시 창원시를 탄생시킨 모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