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국사당과 삼신당은 왜 제쳐놓는 거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30204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재해

허도령 전설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 서낭신을 위한 동제 등은 모두 서낭신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하회마을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달리 말하면 하회마을에서는 지금도 서낭신과 관련한 전설과 민속신앙이 풍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셈이다.

서낭신과 관련하여 형성된 문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신만을 모시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당과 함께 국사당(일명 국신당)과 삼신당을 함께 모시고 있다.

무진생 김씨를 모신 서낭당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 상설공연장 뒤편 화산 중턱에 있으며, 상설공연장에서 주차장을 거쳐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가면 묘지와 논 사이에 자리 잡은 국사당이 있다. 삼신당은 서낭당, 국사당과 달리 사람이 사는 마을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특별한 형태의 집이 아닌 600년 수령의 노거수이다.

국사당에 모셔진 신격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더러 국신당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왕을 신격으로 모신 ‘나라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병산서원의 유래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애 류성룡을 배향하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세워진 병산서원은 초기에 풍악서당이라는 이름의 작은 서당이었다. 고려 후기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하면서 병산서원의 전신인 풍악서당에 토지 800마지기를 하사했는데, 이 사실을 고려한다면 공민왕을 국사당에 모실 법도 하다.

삼신당은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로 둘레가 54m나 된다. 마을 사람들은 삼신당에서 가정의 안녕과 자손 번창을 빈다. 지금은 삼신당을 둘러가며 빽빽이 집이 들어서 있지만 예전에는 넓은 공터여서, 무더운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너나 없이 나무그늘 아래에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마을에 동제를 정성껏 지내지 못했을 때는 호랑이가 삼신당 근처에 나타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사방이 울창한 수풀이었던 듯싶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당에 이어 국사당과 삼신당의 제사도 빠지지 않고 지낸다. 그 유래와 기능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사당과 삼신당은 서낭당과 함께 마을 신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