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893
한자 金履矩
이칭/별칭 자방(子方),정락재(靜樂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2년연표보기 - 김이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22년연표보기 - 김이구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국역 정락재 시집』 발간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수학|강학지 정락재 사숙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 2리 작은 텃골
묘소|단소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 1리[걸마골]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안동(安東)|상락(上洛)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고조할아버지는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直長)을 지낸 김준(金濬)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 정(司僕寺 正)에 추증된 양진당(養眞堂) 김상린(金尙璘)이고, 아버지는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이고, 어머니는 정시열(丁時說)의 딸 금성 정씨(錦城 丁氏)이고, 부인은 호군(護軍) 안익현(安翊鉉)의 딸 순흥 안씨(順興 安氏)이다.

[활동 사항]

김이구(金履矩)[1662~1722]는 어릴 적부터 성품이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만년의 귀먹은 아버지 김양좌를 섬기는데, 늘 곁에서 필담(筆談)으로 세상 소식과 사소한 마을 일들을 소상히 알려 주었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묘소를 살피는 일 외에는 문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과거를 보러 서울에 들렀을 때는 궁궐을 등지지 않았고, 궁궐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국궁(鞠躬)을 하여 임금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숙종이 승하했을 때는 다섯 달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평생 한 번도 성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경전(經傳)과 시예(試藝)에 밝았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당대의 거유인 밀암(密庵) 이재(李栽)도 사람을 시켜 김이구에게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향시에는 여러 번 장원을 하였으나 과거가 여의치 않자 마을 뒤편에 초옥을 지어 사숙(私塾)을 열고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후 장대 서원 원장과 의성 향교 전교를 지내면서 유풍(儒風)을 진작시키는데 노력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이구의 아들 김기응(金箕應)이 시집을 간행하고자 눌은 이광정(李光庭)의 서문을 받았으나 화재로 타버리고, 남은 글과 일가(一家)에 남긴 글을 모아 대산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을 받아 『정락재 시집(靜樂齋 詩集)』을 간행하였다. 2004년에는 김이구의 9세손인 김천수(金天秀)가 국역판을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의성군 점곡면 동변 1리 걸마골 걸마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아들 김기응(金箕應)의 수직(壽職)으로 인해 호조 참판(戶曹 參判)에 추증되었다. 행장은 이광정, 묘갈명은 이윤영(李胤永)이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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