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74
이칭/별칭 이여손 설화,이여송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
집필자 김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 『비안현의 문화와 오늘의 삶』에 수록
성격 설화|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이여송
모티프 유형 하강-순행형[결핍의 제거-결핍]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 2리에 이여손[이여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풍수 이야기.

[개설]

의성군 비안면 서부 2리에 전해져오는 「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 관한 설화이다. 이여송에 관한 설화는 『기문총화(記聞叢話)』, 『난중잡록(亂中雜錄)』, 『대동기문(大東奇聞)』, 『동야휘집(東野彙輯)』, 『임진록(壬辰錄)』, 『한국 구비 문학 대계(韓國 口碑 文學 大系)』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다.

[채록/수집 상황]

의성군 비안면 서부 2리에 사는 박재봉[남, 당시 77세]이 제보한 것으로, 2003년 의성 문화원에서 발행한 『비안현의 문화와 오늘의 삶』 219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서 큰 인물이 태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지맥을 찾아 맥을 끊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지명 유래담이자 풍수담이다. 이여송과 관련된 지역의 전설로는 의성군 구암면에 있는 ‘부처미이’를 들 수 있다. 이여송임진왜란 때 조선으로의 출병을 원하지 않았으나 2차 원병을 이끄는 장수가 되어 전쟁에 참여하였다. 훗날 자신의 참전이 조선 사신의 계략 때문이란 걸 알고 화가 난 이여송은 그 사신을 쫒던 중 말이 더 나아가지 못해 놓치고 말았다.

마침 길 동편에 있는 석불을 발견하고는 이 석불의 조화 때문이라 여긴 이여송은 긴 칼을 빼어 휘둘러 석불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깊은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서 산의 혈을 끊었다고 한다. ‘부처목’이란 지명은 목 없는 부처가 있는 고개 너머 마을이란 설도 있고, 부처가 있는 산 고개 너머의 마을이란 설도 있으며, 부처가 있는 산의 목이라는 설도 있다.

[모티프 분석]

「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가 의성군 비안면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을 염려하여 산천의 맥을 끊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여송과 관련된 풍수 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대체로 ‘이여송이 조선에서 명장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산의 맥을 끊은 후 더 이상 명장이 나지 않았다’와 같이 인과가 분명한 것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러나 의성군 비안면에 전해지는 「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에는 뒷부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구비 문학 대계』 경상북도 고령군 편 「이여송과 이실 고개」 이야기에서는 이여송이 산의 맥을 끊었으나 고개가 저절로 이어졌다고 되어있다. 고령 지역 이야기에는 외부의 어떤 부당함에도 견디고 이겨내고자 하는 군민들의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성군 비안면에 전해져오는 「이여손이 친 혈 이야기」에서는 이여송이 산의 맥을 끊었다고만 할 뿐 그 뒷이야기를 생략함으로써 ‘말이 씨가 되는’ 부정적인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고자 한 의성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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