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절의 황룡이 울며 넘어간 울고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34
한자 -龍-黃龍-
이칭/별칭 울고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용절의 황룡이 울며 넘어간 울고개」 『의성 군지』에 수록
성격 설화|전설|지명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승려|장한상
모티프 유형 탐욕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에 있는 울고개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용절의 황룡이 울며 넘어간 울고개」는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선창리와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조성리 사이에 있는 ‘울고개’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울고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지역 정보 포털’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선창리에서 울고개를 넘어 왼쪽 골짜기 안으로 약 1㎞ 올라가면 옛날에 용절[龍寺] 혹은 용흥사(龍興寺)란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 터가 나온다.

용절이 세워질 당시 다른 절들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용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융성해졌다. 이에 샘이 난 다른 절의 승려가 용절을 방문하고 용절의 승려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절에서 온 승려의 속셈은 용절이 융성하게 된 원인을 알아내는 것인지라 이를 찾아내려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용절에 있는 우물에 황룡(黃龍)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승려는 용절이 융성한 것은 황룡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용절이 망해야 자기네 절이 잘 될 것으로 믿었기에 황룡을 쫓아버릴 궁리를 짜냈다. 그는 용절의 승려들을 모아 놓고 용절이 융성한 이유는 황룡 덕분이라고 하면서 황룡이 오래 살게 하려면 우물에 소금을 자주 넣어 나쁜 벌레가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용절을 떠났다. 용절의 승려들은 자기 절로 돌아간 승려의 말에 혹해 소금을 우물에 넣었다. 결국 짠 물맛을 견디기 힘들었던 황룡은 큰 소리로 울며 고개를 넘어 날아가 버렸고, 용절은 점점 쇠락하여 망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황룡이 크게 울면서 넘어간 고개는 울고개라 불렸다.

울고개의 유래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장한상(張漢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장한상울고개 근방 출신인데 나라의 힘을 빌려 고향에서 수리 사업을 하고자 했다. 장한상은 큰 못을 막기 위해 지방의 인력을 동원했는데 멀리 전라도의 장정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장은 면회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부역으로 동원되어 온 사람들의 가족은 울고개에서 일하는 모습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멀리서 찾아와 가족의 모습을 보고 울면서 지나갔다고 해서 이름을 ‘울고개’라 한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용절의 황룡이 울며 넘어간 울고개」의 주요 모티프는 ‘탐욕’, ‘황룡이 떠남’, ‘절의 쇠퇴’, ‘한’이다. 이 전설은 용절을 시기한 다른 사찰 승려의 ‘탐욕’이 황룡을 용절의 우물에서 떠나게 만들어 결국 ‘절이 쇠퇴’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또 울고개 근방 출신 병마절도사가 고향의 수리 사업을 위해 장정들을 동원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두 이야기 모두 ‘탐욕’에 대한 경계가 드러난다. 전자의 경우 승려의 탐욕, 후자의 경우 병마절도사의 탐욕이다. 특히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넘었다는 내용에는 권력에 대한 묘한 울분이 녹아 있다고 보인다.

[참고문헌]
  • 『의성 군지』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 1998)
  • 의성 문화 관광(http://tour.usc.go.kr/)
  • 지역 정보 포털(http://www.oneclic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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