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552
한자 占卜
이칭/별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미래에 대한 어떤 징조를 미리 판단하고자 하는 기술.

[개설]

점복은 인간의 능력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未來事)나 알 수 없는 일을 주술의 힘을 빌려 추리나 판단을 하는 행위이다. 이를 단순히 ‘점’이라고도 한다. 점복은 자연 현상이나 생리적 현상을 판단하거나 인위적(人爲的)으로 어떤 현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판단한 결과로써 장래를 점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속신(俗信)에는 점복과 함께 예조(豫兆)·금기(禁忌)·주술(呪術) 등을 동반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밖에 귀신·도깨비·부적(符籍)까지도 포함시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사전에 나타난 일을 예조(豫兆)라 하는데, 이는 인과 관계로 치면 인(因)[원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결국 점복이란 인과 관계의 인으로부터 과(果)[결과]를 미리 알아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즉, 인에 해당하는 예조를 기초로 한 결과를 추측하는 점복의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축적된 지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의 점법은 일찍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미 상고 시대에서부터 복(卜), 즉 수골이나 귀갑을 사용하는 점이 있었다. 그러한 예로 부여의 민속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톱을 보고 전쟁의 승패를 미리 점쳤다고 한다. 이때 도살한 소의 발톱이 벌어져 있으면 흉하고, 붙어 있으면 길하다고 점쳤다.

이외에도 고대 사회에서는 점복을 담당한 전문적인 점복자를 일관(日官)·일자(日者)·무자(巫者)·사무(師巫)·점복관(占卜官) 등으로 불렀다. 그리고 전문적인 점복자들을 관직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제반사를 점치게 하였다. 이에 그들이 소속된 관청을 신라 때는 관상감이라 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고려 이후 구체화되어 고려시기에는 천문·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를 담당하는 태사국(太史局)과 그 밖의 점복을 담당하는 태복감(太卜監)이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에서는 점복을 담당하는 복박사직(卜博士職)과 복정직(卜正職)을 두고 점복을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고려의 제도를 이어 서운관을 두고 여기서 천문·지리·역수·점산(占算)·측후·각루 등을 관장하게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전문적인 점자(占者)를 복사(卜師)라고도 하였다. 복사는 박사와 같은 말이었으며, 박사는 박수(博數), 즉 남무(男巫, 覡)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복자·박사·박수는 모두 같은 기능을 지닌 인물에 대한 호칭으로서 이들은 모두 무인(巫人)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무인에 의하여 미래를 점친 예는 고대 어느 시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절차]

의성 지역에서는 정초에 무당에게 점을 보는 의례가 발달되어 있어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를 행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약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또한 점복을 과거에 비해 크게 믿지 않고 있다. 의성 지역에서는 석전과 줄다리기, 횃불싸움의 승부를 통해 점을 치는 방법도 과거에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동 화합을 위한 축제 행사로만 활용이 되고 있어 종교적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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