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향약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375
한자 義城鄕約會
분야 종교/유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향교길 57[도동리 80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의성 향약회 창립
현 소재지 의성 향교 서재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808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유림 단체.

[개설]

향약은 11세기 초 북송(北宋) 때 향촌을 교화·선도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치적인 규약이었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후기 성리학의 보급과 때를 같이하며, 15세기 후반 사림파들에 의해 적극 장려되었다. 이때의 향약은 양반들이 향촌의 자치와 이를 통해 하층민을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각종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으로 활용하였다. 1556년 퇴계 이황이 향리인 예안에 퇴거하여 작성한 「예안 향립 약조(禮安 鄕立 約條)」가 조선 향약의 시초였다.

의성 지역에서의 향약은 신원록(申元祿)의 문집인 『회당집(悔堂集)』「향약 후기(鄕約後記)」에 따르면 1560년 이전에 있기는 하였으나 적극적으로 시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48년 이민환(李民寏)퇴계의 「예안 향립 약조」에 의거하여 의성 지역 실정에 맞도록 가감하여 「칠강삼십오목(七綱三十五目)」의 향약을 만들어 시행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규약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891년 경상도 관찰사 이헌영(李攇永)이 향약을 제정하여 의성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내 전역에 시행하려 하였으나 한말의 혼란 속에서 크게 시행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설립 목적]

의성 향약회는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각종 재난 속에서 상부상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의성 향약회는 1981년 발기 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오상구(吳相九)를 선출했다. 2대 회장인 장태상(張台相)을 거쳐 3대 회장인 김영호(金英鎬)가 취임하면서 사무실을 의성 향교 서재(西齋)로 옮겼다. 1990년에는 조직을 확대하여 의성군 지역 18개 읍면에 지회를 조직하였다.

[주요 사업과 활동 사항]

의성 향약회는 4대 덕목, 즉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과 각 덕목에 따른 31개 조항, 그리고 112개 세칙을 실천하도록 권장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 그 일환으로 1991년에는 의성 군민회관에서 향약 실천 결의 대회를 개최하였다.

1992년에는 군비 1,000만 원을 지원받아 『의성 향약지(義城 鄕約誌)』를 발간하여 읍면의 지회와 회원들에게 배부하였다. 1998년에는 의성군 의성읍 내에 한문 교실을 개설하여 한자 교육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한편, 인성 회복과 도덕성 회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현황]

의성 향약회는 설립과 함께 의욕적인 활동을 벌여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8개 입면에 400여 명의 회원을 둔 건실한 단체였다. 그러나 이후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고, 향교 내에 20개에 달하는 유사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급격히 조직력이 약화되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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