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113
한자 林在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동부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9월 14일연표보기 - 임재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임재호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동 시장 독립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7일 - 임재호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임재호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확정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1년 7월 24일연표보기 - 임재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임재호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임재호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동부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동부리
활동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동부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임재호(林在虎)[1898~1961]는 1919년 3월 12일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과 의성군 쌍계동의 박영화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의 소식을 듣고 동부동과 서부동의 김석근(金石根)·박홍섭(朴洪燮)·박후도(朴後度) 등의 청년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 시위에 발맞추어 함께 궐기할 것을 다짐하고 먼저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3월 13일 밤 8시경 임재호는 청년들과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서부동 장터로 가서 시장에 모인 40~50명의 장꾼과 농민들에게 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 운동의 상황과 취지를 설명하고 태극기를 나눠준 뒤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김석근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이 점차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동부동 쪽에서 한 무리의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시장 쪽으로 몰려와 시위 군중은 100여 명이 되었다. 밤이 늦도록 시장을 누비던 시위대는 경찰이 나타나 김석근을 잡아가면서 흩어졌다.

3월 13일 밤 서부동 시장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검거를 피한 임재호박후도·박홍석 등과 함께 다시 시위를 일으키기로 약속한 후 16일 오후 3시경 시장에 모인 30여 명의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를 불렀다. 또 이날 밤 9시경 이두동과 장춘동에서도 어린이를 포함한 100여 명이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언도받고, 대구 복심 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임재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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