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96
한자 李守元
이칭/별칭 이동(李洞)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 3월 4일연표보기 - 이수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이수원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3일 - 이수원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4년 11월 15일연표보기 - 이수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수원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수원(李守元)[1874~1964]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 대사동 주민들과 함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동참하기로 하고 오후 7시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어서 16일 오후 8시에도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기도동을 거쳐 창길동까지 시위를 한 후 자진 해산하였으며, 3월 17일에는 대사동 우리곡(尤利谷)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하여 안평면 마전동·기도동·괴산동을 돌면서 시위 군중 400여 명과 함께 창길동을 거쳐 화령동까지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였다.

3월 18일 밤에는 300여 명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마전동·기도동·창길동·박곡동·괴산동을 누비며 시위를 벌이고 안평 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3월 19일 도리원 장날에는 시위 군중 700여 명이 박곡동·석탑동·신월동을 거쳐 봉양면 도리원 장터로 나아가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수원은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3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언도 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8일 대구 지방 법원 형사 2부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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