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61
한자 朴世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 8월 9일연표보기 - 박세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2일 - 박세길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 독립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4일 - 박세길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6년 11월 23일연표보기 - 박세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1년 - 박세길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활동지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세길(朴世吉)[1876~1946]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이 주도한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에 참가하였다. 3월 12일 박영화는 동료들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고창하고 마을로 돌아오자 교인과 동민들은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박영신의 집 앞 도로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박영화 등이 함께 태극기를 나누어 주자,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동리를 시위 행진하였고,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3월 12일 오후 4시 급보를 받은 의성 경찰서에서는 조선인 경부와 순사 부장을 급히 파견하여 비안 주재소 경찰과 함께 시위 주동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여 모두 18명이 기소되어 형을 받았다.

박세길은 3월 12일 쌍계동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동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14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1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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