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45
한자 金在範
이칭/별칭 김재범(金載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9월 28일연표보기 - 김재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8일 - 김재범 대구 학생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8일 - 김재범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10월형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31년 3월 15일연표보기 - 김재범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김재범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재범(金在範)[1900~1931]은 김재범(金載範)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출신으로, 1919년 대구 계성 학교(啓聖學校) 3학년에 재학 중 대구에서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계성 학교의 교사이던 백남채(白南採)·최상원·권의윤·최경학(崔敬學) 등은 학생 대표들인 김재범(金在範)을 비롯, 심문태(沈文泰)·김삼도(金三道)·정원조(鄭元祚)·박태현(朴泰鉉)·이승욱(李陞旭)·손석봉(孫石鳳)·최영학(崔永學)·이영식(李永植)·이성용(李聖容)·박재곤(朴在坤) 등과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학생들은 대구 고등 보통학교, 신명 여학교 학생 대표들과도 밀의하여 시위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대구에서 3월 8일과 10일 만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는 경상북도 각 지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재범은 대구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월 18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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