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19
한자 趙性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895년 - 조성학 김하락 의진에 참가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조성학(趙性學)[?~?]은 김하락의 이종제로서, 김하락의 권유로 김하락 의진에 가담하여 도총을 맡았다. 조성학은 특히 『주역』에 근거한 군사적 소양을 바탕으로 전투 수행시 김하락을 도와 의진의 주요 방침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김하락은 단발령 직후 거의하여 1896년 7월 순국할 때까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김하락은 의병 전개 과정을 기록한 『김하락 진중일기(金河洛陣中日記)』를 남겼다. 김하락은 단발령이 내려지자 거사할 계획으로, 이종제인 조성학(趙成學)·동지 구연영(具然英)·김태원(金泰元)·신용희(申龍熙) 등과 더불어 이튿날 새벽에 몰래 한강을 건너 이천에서 봉기하였다. 김하락 의진은 의성 의병이 황산 전투에서 대패했다는 보고를 접하고, 의성 의병장 김상종(金象種)을 찾아 연합하기로 하여 이천 의진·의성 의진·청송 의진 등 연합 의진을 결성하였다. 이때 조성학도 참여하였다. 연합 의진은 1896년 5월 14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감은리 전투[성황현 전투]를 치러 승리를 이끌었고, 이어 5월 25일 비봉산 전투를 치렀으나 패배하기에 이르러 김상종은 의성 의진의 해산을 명하였고, 김하락 의진은 경주로 이동하였다.

김하락 의진이 경주에 도착하자 경주 지역의 유림 김병문·이시민·서두표 등이 찾아와 연합 의진의 결성을 제안하여 이천 의진·경주 의진 등 연합 의진이 결성되었다. 여기서 경주성 전투를 치렀으나 패퇴하여 김하락은 부대를 이끌고 영덕을 거쳐 영해로 갔다. 이때 적병 300여 명이 영덕으로 돌진해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유시연에게 영덕으로 가서 적을 토벌하고 함께 안동부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당시 24세에 불과했던 유시연이 주저하므로 물리치고 조성학과 더불어 진격하기로 하였다. 김하락 의진은 결국 영덕 전투에서 김하락이 자진 순국하였으며 의진은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