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90
한자 朴嗣叔
이칭/별칭 효겸(孝兼),두곡(杜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 2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6년연표보기 - 박사숙 출생
출생지 박사숙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 2리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임진왜란 창의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겸(孝兼), 호는 두곡(杜谷)이다.

[활동 사항]

박사숙(朴嗣叔)[1556~?]은 1556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에서 태어났다. 젊을 때부터 강개한 점이 남달랐다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거느리고 경주 의진에 참여하여 분투하였다. 용감한 전투를 치루고 적지 않은 공을 거두었으나 세력이 미약하여 성이 함락되자 적삼을 벗어 손가락을 잘라 ‘나라에 충성하느라 어버이를 잊어버리니 의는 무겁고 은혜는 가볍다(事君忘親 義重恩輕).’라는 혈서를 써서 망건을 벗어 함께 싸고 타고 온 말의 목에 걸었다.

따라온 노속 옥금에게 집으로 타고 가기를 당부하였다. 말이 차마 주인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눈치임에 ‘빨리 가라.’고 외치고는, 적진에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며 적을 베다가 사망하였다. 노속 옥금도 뒤따랐다. 주야로 달려 집으로 돌아온 말은 공의 비보를 알리는 소임을 다한 뒤 의관장(衣冠葬)을 마치고는 어느 날 주인이 죽어간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세 번 울고 죽었다 한다. 그 뒤에 패잔병이 되어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사람들로부터 공의 마지막 사망의 모습을 소상히 전해들을 수가 있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 2리의 병호 충렬사(屛湖 忠烈祠)에 열향되었다가,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86년 국도변에 유허비가 세워졌는데, 능성인 구현(具玹)이 비문을 짓고, 풍산인 유용우(柳龍佑)가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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