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81
한자 金應周
이칭/별칭 문욱(文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김응주 사망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참봉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욱(文郁). 증조할아버지는 현신 교위 부사직(顯信 校尉 副司直)을 지낸 김한동(金漢仝)으로 의성 김씨 부사직공파의 파조이자, 중사촌 마을의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내금위 돈용교위 부사맹(內禁衛 敦勇校尉 副司猛)을 지낸 김만정(金萬禎)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이고, 어머니는 김광수(金光粹)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남세기(南世期)의 딸 영양 남씨(英陽 南氏)와 참봉 권순경(權舜卿)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큰 형은 김응하(金應夏)이고, 둘째 형은 김응상(金應商)이다. 이종(姨從)으로 유운룡·유성룡 형제가 있다.

[활동 사항]

김응주(金應周)[?~1592]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인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에게 가학을 전수 받았으며, 장성해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산림에 은둔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나아가 후손을 교육하기 위하여 건마산 병암 아래에 두 형과 함께 병암 서당(屛巖 書堂)을 창건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형인 김응하, 김응상과 조카 김치중, 김치화, 김치윤, 김치홍, 김치강 등과 창의(倡義)하여 건마산성(乾馬山城)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김응주의 숭고한 죽음에 대하여 왜적의 장수가 ‘충성스런 간이요, 의리 있는 뇌가 차가운 서리를 능멸하고 따가운 햇살을 꿰뚫는다[忠肝義腦 凌霜貫日].’ 라고 극찬(極讚)하는 내용을 적어 입표(立標)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고운사(孤雲寺) 동하(洞下) 장부(長阜) 곤향(坤向)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2리에 선조김응하, 김응상, 김응주가 세운 병암 서당이 있다. 선조들의 충의를 받들고 더불어 원래의 목적인 후진 양성을 위해 후손들이 1797년과 1931년, 그리고 2004년에 중건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현재는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