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68
한자 李炯石
이칭/별칭 송오(宋五),국은(菊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 이형석 출생
묘소|단소 이형석 정효각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동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김녕(金寧)

[정의]

개항기 의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송오(宋五). 호는 국은(菊隱). 아버지는 김덕기(金德基)이다. 단종 복위 운동으로 처형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예로 대대로 충청북도 영동군에 살다가 아버지 대에 이르러 의성 기동(箕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서제 2리]으로 이주해 왔다.

[활동 사항]

이형석(李炯石)[1848~?]은 영특한 자질을 타고 나서 11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롭게 지내며, 윗사람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고 실천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59세 때 갑자기 집으로 호랑이가 들어와 식구들을 해치려 하였다. 이에 그는 아버지와 합심하여 호랑이를 두들겨 잡았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심한 상처와 함께 독이 몸속 깊이까지 침투했다. 그는 독을 입으로 빨아내어 그 상처를 낫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5년간 병석에서 지냈다. 그 사이 한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에 정성을 다하며 대소변의 처리는 물론 빨래까지도 손수 했다. 6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어머니가 쇠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농사철에 소는 농기구를 대신하기에 소를 잡지 않아 쇠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상주읍까지 가서 구하려 했으나 얻지 못해 자신의 성의 부족을 한탄하며 집으로 돌아오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데 까마귀 떼가 나무 위에서 서로 다투며 울부짖어 이상하게 여겨 보니 쇠고기 한 덩어리가 짚으로 싼 꾸러미에 매달려 있었다. 또 어느 해 동지섣달에는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낙동강 가에서 하루 종일 낚시를 하였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데 갑자기 잉어 한 마리가 뱃전으로 뛰어 올랐다.

어머니가 병석에 있는 동안 대변을 직접 맛보며 병세를 가늠하고, 위급할 때는 손가락을 베어 수혈하는 등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런 정성 덕분에 어머니는 72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묘소를 마을 뒤에 마련하고 하루 세 번 3년 동안 매일 성묘하였다.

[상훈과 추모]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 龍驤衛 副護軍)”이라는 직첩을 내리고, 정효각을 세워 주었다. 또한 경상북도에서는 포상을 하고, 팔도 유림 향약소에서는 효행을 찬양하는 완의문(完議文)을 전해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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