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24
한자 申體仁
이칭/별칭 자장(子長),회병(晦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신체인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12년연표보기 - 신체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신체인 금산 서원에 배향
출생지 신체인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수학|강학지 금연정사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묘소|단소 신체인 묘소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동곡
사당|배향지 금산 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지도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아주(鵝洲)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장(子長), 호는 회병(晦屛). 신숙범(申叔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분구(申賁龜), 아버지는 신도만(申道萬)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민행(金敏行)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 柳氏) 유후원(柳後元)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체인(申體仁)[1731~1812]은 3~4세 때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면 말도 없이 그 집에 가서, 글 읽는 소리를 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 화장산(華藏山)[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일대]의 초당에서 공부하였고, 장성해서는 김낙행(金樂行), 임필대(任必大),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30세 무렵에는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의술·병가·산수(算數)·복서(卜筮)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1761년(영조 37) 향해(鄕解)에 응시해서 장원하는 등 학문적 명성이 있었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1782년(정조 6) 금산(錦山)[구미리]에 금연 정사(錦淵 精舍)[현 금산 서원(錦山 書院)]가 완성되자 그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1786년에는 빙계 서원(氷溪 書院)의 교석(敎席)을 주도하며 통강례(通講禮)를 행하고자, 주자(朱子)의 월삭회약(月朔會約)을 모방해 의절까지 정해 놓았으나 실시하지 못하였다.

1788년 눈병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자, 존양(存養) 공부에 열중하였다. 1807년(순조 7) 경술과 문장이 모범이 된다하여 의성 현령(義城 縣令)이 천거하였고, 경상도 관찰사가 연이어 신체인의 학행을 조정에 계청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상정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던 280여 명의 인사들과 호문학단(湖門學團)을 구성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호문학단 중에서도 그는 학문이 뛰어나 호문육군자(湖文六君子)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의 문집으로는 12권 6책의 『회병집(晦屛集)』이 전하는데,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회병집』 권6에 수록되어 있는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 천주교를 비판한 글로, 당시 천주교에 대한 영남 유림의 인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외에도 ‘경(敬)’의 요체에 대해 설명한 4권 2책의 『숭경록(崇敬錄)』을 저술하였으며, 정만양(鄭萬陽), 정규양(鄭葵陽) 형제의 어록인 『훈지양선생어록(塤篪兩先生語錄)』도 산교(刪校)하였다. 한편, 『아주 신씨 참판공 파보』에는 『징성록(徵省錄)』을 저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동곡(凍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금산 서원신지제(申之悌), 신지효(申之孝)와 함께 배향되어 있다. 금산 서원신체인이 강학을 위해 1782년 건립한 금연 정사를 1977년 중건하고, 1981년 서원으로 승격한 것이다. 신체인의 위패는 신지제와 함께 1977년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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