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23
한자 申埰
이칭/별칭 자경(子卿),인재(忍齋),삼모(三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0년연표보기 - 신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신채 진사시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신채 성균관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신채 낙향
몰년 시기/일시 1672년연표보기 - 신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58년 - 신채 단구 서원에 배향
출생지 신채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신채 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신채 묘소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사당|배향지 단구 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지도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아주(鵝洲)
대표 관직|경력 진사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경(子卿), 호는 인재(忍齋). 참의(參議) 신원록(申元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신적도(申適道)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 첨정(僉正) 윤순조(尹淳祖)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 권익창(權益昌)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채(申埰)[1610~1672]는 어린 시절부터 총기를 보이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1629년(인조 7) 향해(鄕解)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며, 1643년(인조 21)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향시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646년(인조 24)에는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는데, 성균관에서의 학업 활동이 뛰어나 영남의 삼모(三某)라는 칭호를 받았다. 또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의 명으로 「태학명(太學銘)」을 짓기도 했으며, 또 세자의 명에 의하여 「성학 도명(聖學 圖銘)」을 지었다.

1660년에 모친상을 당하고 1664년에 부친상을 당하자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모하듯 지극 정성으로 전후 상례를 치렀으며, 그 후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실천의 공부에 전념하였다. 이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집 앞에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당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하였다. 아울러 팔지산(八智山) 아래에 별업(別業)을 개척한 뒤, 그곳의 지명을 팔지(八智)[현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로 고치기도 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는 4권 2책의 『인재집(忍齋集)』이 전하는데, 1931년 후손 신상하(申相夏)가 간행하였다. 문집에 수록된 글들 가운데 「답대학문목(答大學問目)」, 「용학표리설(庸學表裏說)」, 「성학십도명(聖學十圖銘)」 등과 같은 성리학 논설들이 주목된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58년(철종 9) 부친 신적도, 계부 신열도와 함께 단구 서원(丹邱 書院)[현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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