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879
한자 張日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71년 - 장일신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02년 - 장일신 훈련원 첨정에 임명
거주|이주지 의성현 - 경상북도 의성군
부임|활동지 진주 판관 - 경상남도 진주시
부임|활동지 경주 판관 - 경상북도 경주시
부임|활동지 기장 현감 - 부산광역시 기장군
부임|활동지 부산포 첨사 - 부산광역시
부임|활동지 동래 현령 - 부산광역시 동래구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순천(順天)
대표 관직 진주 판관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근계(近溪). 소감(少監) 장사검(張思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헌(張憲)이고, 아버지는 참군(參軍) 장윤의(張允義)이다.

[활동 사항]

장일신(張日新)[?~?]은 어려서부터 완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1471년(성종 2) 무과 별시에 급제하여, 1486년 동래 현령(東萊 縣令), 진주 판관(晉州 判官)와 경주 판관(慶州 判官), 기장 현감(機張 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청백리로 유명했다고 한다. 1489년 의주 판관(義州 判官)으로 있으면서 부모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간병을 하였다. 모친의 간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직했다가 간원(諫院)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일찍이 남도포 만호(南桃浦 萬戶)에 제수되었는데, 이때도 모친의 간병을 이유로 거부하였으나 남도포가 멀기 때문에, 모친의 병을 거짓으로 핑계 대고 거부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파직을 당하고, 장 1백 대를 맞았으며 고신(告身)을 모두 빼앗겼다. 1502년(연산군 8) 훈련원 첨정(訓鍊院 僉正)에 제수되었으나, 당시 정언(正言) 조옥곤(趙玉崐)이 이상 전력을 들어 교체와 함께 추국을 청하였다. 이에 병조 판서(兵曹 判書) 이극돈(李克墩) 등은 이를 변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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