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850
한자 吳永年
이칭/별칭 백인(伯仁),금사(錦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71년연표보기 - 오영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9년 - 오영년 사마시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97년 - 오영년 별시 문과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06년 - 오영년 형조 좌랑에 임명, 정국 원종공신 2등에 녹훈
활동 시기/일시 1514년 - 오영년 장령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18년 - 오영년 사간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20년연표보기 - 오영년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해주(海州)
대표 관직 사간(司諫)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인(伯仁), 호는 금사(錦沙).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 경상도 안렴사를 역임하고 왕조 교체기 경상도 의성현에 은거한 오국화(吳國華)이고, 할아버지는 오진(吳進)이고,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오찰(吳札)이고, 부인은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다.

[활동 사항]

오영년(吳永年)[1471~1520]은 1489년(성종 20)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1497년(연산군 3)에는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임금에게 항소(抗疏)하고 귀향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 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으며, 형조 좌랑(刑曹 佐郞)에 올랐다.

그 후 진하 서장관(陳賀 書狀官)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귀국한 이후에는 평안도 도사(平安道 都事), 직강(直講), 지평(持平), 교리(校理), 병조 정랑(兵曹 正郞), 장령(掌令), 수찬(修撰), 이조 좌랑(吏曹 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514년 다시 장령이 되었으며, 1518년 사간(司諫)에 올랐다.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경상도 의성현에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주력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 사마곡(司馬谷)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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