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807
한자 金五應
이칭/별칭 송서(宋瑞),구은(龜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9년연표보기 - 김오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3년 - 김오응 문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749년연표보기 - 김오응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舊])
대표 관직 현감(縣監)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상락 김씨(上洛 金氏)]. 자는 송서(宋瑞), 호는 구은(龜隱). 빙계 서원(氷溪 書院) 원장 옥계(玉溪) 김상유(金尙瑜)[1605~1678]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소북(韶北) 김은좌(金殷佐)이고, 아버지는 김이성(金履成)이며, 어머니는 이숙(李淑)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부인은 김세주(金世柱)의 딸 선성 김씨(宣城 金氏)[禮安 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오응(金五應)[1699~1749]은 가학으로 학문을 익혀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723년(경종 3)에 사촌형 김성(金聲)과 함께 문과에 동방급제[同榜及第]하였다. 1725년(영조 1) 남부 학당의 훈도가 되고, 성균관 학유·학록·학정·박사가 되어 양현고(養賢庫) 직장을 겸하였다. 1728년 성균관 전적, 이듬해 사헌부 감찰을 거쳐, 1730년에 병조 좌랑, 춘추관 기서관, 충청 도사(忠淸 都事)를 지냈다. 1732년 오위의 부사과를 거쳐 병조 정랑이 되었다.

1733년 2월 25일에 무신란(戊申亂) 이후 영남 사람들이 인재 등용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소수(疏首)로서 상소하였다. 그해 춘추관 기주관을 지내고, 함평 현감에 임명되었다.

[학문과 저술]

유집(遺集)을 남겼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고 있다.

[상훈과 추모]

행장은 이가순(李家淳), 묘갈명은 강신혁(姜信赫)이 지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활동 사항]의 둘째 줄에 '동반 급제'를 '동방급제'로 고쳐 주십시오.
[同榜及第]입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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