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710
한자 道岩里肝岾山烽燧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 산117-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신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세기 이전 - 도암리 간점산 봉수 축조
폐지 시기/일시 18세기 이전 - 도암리 간점산 봉수 폐지
관련사항 시기/일시 2004년 -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 산117-3지도보기
성격 봉수|봉수터
소유자 사유지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에 있는 봉수터.

[변천]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기사는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비안현조에 “간점현 봉화는 비안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25리 300보 거리에 있는 군위 땅의 마정산 봉화를 바라고, 북쪽으로 30리 270보 거리에 있는 안정현 땅의 대암산 봉화를 바라본다[肝岾峴烽火 在縣南十五里許 南望軍威地 馬井山烽 相距二十五里 三百步 北望兼安貞縣地 大岩烽火 相距十三里二百七十步].” 라고 하였다. 또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의 비안현조에도 “봉화가 두 곳에 있는데, 비옥현 안에 있는 간점산 봉화는 남쪽으로 군위현의 마정산 봉화를 겨누고, 북쪽으로 안정현의 대암산 봉화를 겨눈다[烽火二處 肝岾山 在比屋縣內 南准軍威馬井山 北准安貞大岩].”라고 했으며,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비안현조에도 “간점산 봉수는 남쪽으로 군위현 마정산 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 대암산 봉수에 응한다[肝岾山烽燧 南應軍威縣馬井山 北應大岩山].” 라고 하였다.

하지만 1765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북쪽으로 응하던 대암산 봉수가 폐지되면서 함께 폐지된 것으로 나타나 있어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832년경에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비안현조에는 성지(城池)도 없고 봉수도 없다고 하였다.

[위치]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 산61-1, 산117-3 일원, 즉 모로 마을 남쪽 해발 226.8m의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봉수터 서쪽으로 약 3㎞ 지점에는 장춘리 봉수터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간점산 봉수터 유적은 장춘리 봉수터 유적과 마찬가지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있다. 유적은 의성군 비안면 도암 2리 윗마을 남쪽으로 솔밭골을 따라 접근할 수 있으나, 인접한 군위군 소보면 내의동 윗언실 마을의 동쪽 작은언실골을 따라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는 숲이 우거져 통행이 어렵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4월~5월에는 의성 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에서 의성군 관내 봉수 유적에 대한 문헌 조사와 지표 조사가 있었다. 또한 2004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 일대의 토양은 침식이 잘되는 화강암 풍화토로서, 봉수 시설과 관련된 석축 구조의 유실이 많은 편이다. 유적은 남쪽보다 북쪽이 약간 높은 경사 지형에 입지하며, 현재 둘레 250m 정도의 석축 구조가 일부 남아 있다. 남쪽 부분은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여 석축을 하였으며, 전반적으로 유실이 심하여 연대와 건물지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은 남쪽의 군위군 마정산 봉화로부터 신호를 받아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로 연결하는 간봉(間烽)이다.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까지 관련기사가 꾸준히 기록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까지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지도서』에 북쪽 상대 봉수인 대암산 봉수와 함께 폐지된 것으로 나타나 있어,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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