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597
한자 義城金城山古墳群
이칭/별칭 탑리리 고분군, 대리리 고분군, 학미리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 142-1|대리 351|학미리 산101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 탑리리 1호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5년 - 대리리 5호분 경희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대리리 3호분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6년 - 학미리 고분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4월 13일연표보기 - 의성 금성산 고분군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대리리 고분군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 대리리 고분군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기저부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대리리 2호분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2020년 4월 1일연표보기 - 의성 금성산 고분군 사적 제555호 승격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의성 금성산 고분군 사적 재지정
소재지 탑리리 고분군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 142-1 일대지도보기
소재지 대리리 고분군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51 일대지도보기
소재지 학미리 고분군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산101 일대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나무 덧널 무덤|돌무지 나무 덧널무덤|굴식 돌방무덤|구덩식 돌 덧널무덤|다곽식
크기(높이, 지름) 높이 1~8m|지름 10~26m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대리리·학미리 일대에 있는 고분 유적.

[위치]

의성 금성산 고분군은 삼국 시대의 고총 고분으로 금성산(金城山)의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모지산(暮知山)[162.6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금성면소재지에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국보 제77호] 서쪽에 연결된 국도 28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좌우에 연결된 능선 대부분이 의성 금성산 고분군에 해당한다.

[고분군의 분포 및 범위]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는 금성면 일대는 쌍계천금성산 사이에 넓은 곡간 평야가 펼쳐져 있어 경작지와 용수 확보 등 선사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이는 이 일대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초전리·학미리·수전리 지석묘군의 분포에서도 알 수 있다.

고분군의 분포는 군위군 우보면에서 의성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중앙선 철도로 구분되므로 국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대리리 고분군, 동쪽은 고분군의 능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학미리 고분군, 남쪽은 탑리리 고분군(塔里里 古墳群)으로 불리다가 1998년 4월 13일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면서 의성 금성산 고분군으로 통합되었다.

1. 탑리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42-1 일대에 있는 고분군이다. 금성산 기슭에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는 탑리리 북동쪽 약 2㎞ 지점에 이르러 동서로 길게 누운 구릉[높이 160m]이 된다. 고분군은 북서쪽으로 연이어진 능선 상에 다수 분포한다. 고분을 가로지르는 국도 28호선을 경계로 대리리탑리리로 구분되나 사실은 탑리리 고분군 능선 말단부가 대리리 고분군까지 연장되어 있다. 고분군 서쪽으로 넓은 하상 평야가 있으며, 평야 사이로 쌍계천(雙溪川)이 북서~남동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쌍계천미천(眉川)과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중요한 하천이다. 고분은 원대리 마을 북동쪽이자 전 경덕왕릉(傳 景德王陵) 동쪽 능선에 130여 기가 확인된다.

2. 대리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높이 112.2m인 구릉 능선부와 높이 106.5m인 구릉부, 그 사이의 계곡부 등 3구역으로 나누어져 40여 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다.

3. 학미리 고분군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산101번지 깐창골 마을 북동쪽 능선에 수십 기가 분포한다. 원형 또는 타원형 봉토분으로 봉분 장축은 북동~남서향이며 저면에는 호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드러나 있다. 봉분은 지름 10~20m, 높이는 3~5m로 다양하다. 고분은 도굴된 것이 많으며 훼손된 고분 주위로 석재로 보이는 할석과 천석들이 산재하며 토기편도 흩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0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의성 탑리리 고분을 발굴 조사하였으며, 금동관·금동 위세품(威勢品) 등이 출토되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1965년에는 탑리리 고분군에서 북서쪽으로 800m 떨어져 있는 대리리 5호분을 경희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하였으며, 1980년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도굴에 의해 파괴되어 방치되고 있던 돌덧널 무덤 6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66기 가운데 도굴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Ⅷ지구 12호 1기뿐이었다. 이후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군내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을 뿐, 고고학적 조사는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면 의성군에서 의성 금성산 고분군조문국(召文國) 사적(史蹟)으로 지정하고 정비하여 공원화하는 사적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를 기획하였고,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 대리리 일대의 고분 분포도 작성을 위한 기초 조사와 대리리 3호분과 학미리 고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연차적으로 실시하였다. 2004년에는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의성 조문국 사적지 공원화 사업 지구 내 시굴 조사에서 원삼국 시대와 삼국 시대의 나무 덧널 무덤을 보고한 바 있으며, 2007년에는 조문국 사적지 내 고분 기저부 조사와 2009~2010년 대리리 2호분의 발굴 조사를 하였다.

[형태]

1. 탑리리 고분군

발굴 조사된 고분의 봉토는 남북으로 약간 긴 타원형으로 장축의 지름이 26m, 단축의 지름이 20m, 높이 4.6m 정도였다. 고분은 하나의 봉토 안에 5기의 곽을 배치한 무덤이다. 고분은 먼저 지름 16m 정도의 호석을 가진 남~북 장축의 나무 덧널 무덤이 중심이 된 원형분을 구축하였으며, 그 후 북편 호석을 걷어내고 여기에 동~서 장축의 나무 덧널 무덤을 ‘T’자상으로 구축하였다. 그리고 3기의 나무 덧널 무덤을 추가로 축조하였다. 이 중 제일 먼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1곽의 구조를 보고서에서는 앞트기식으로 파악하였으나 나무 덧널 무덤 또는 유사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으로 판단되며 발치 쪽이나 장벽 쪽에 부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고분의 피장자는 조문국(召文國)의 수장으로 추정된다.

2. 대리리 고분군

고분군 중 대형 봉토분인 2호분과 3호분, 5호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평지에 가까운 곳에 조성된 3호분은 의성 금성산 고분군 중에서도 계곡부 상단의 평탄면인 높이 94.5m에 입지한다. 주변에는 경덕왕릉을 포함하여 6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으며, 각 고분은 20m 간격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그재그 형태로 분포한다.

3호분의 잔존 분구의 규모는 지름 11~13m, 높이 3m이고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조사 결과 1곽은 장축 방향이 남북향이고, 분구 기저부에 위치하는 2곽은 장축 방향이 동서향이어서 평면 배치상으로 보면 이들은 서로 직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1곽은 단곽식이고 2곽은 나무 덧널인 부곽이 나란하게 11자형으로 배치된 주·부곽식 구조이다. 이들의 선후 관계는 토층 단면으로 볼 때, 2곽의 주·부곽이 동시 축조된 이후에 2곽의 분구를 파서 1곽을 축조한 것으로 확인된다.

1곽은 변형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으로 분구의 서쪽에 위치하며 2곽의 분구 상부를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장축 방향은 N₋20°₋E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1곽의 규모는 길이 315㎝, 너비 150㎝이다. 벽석은 길이 30~50㎝ 내외, 두께 10~30㎝ 내외의 할석과 천석으로 축조하였다. 1곽은 돌덧널을 만드는 식으로 벽석을 축조한 후 나무널을 안치하고 나무널과 벽석 사이를 천석으로 뒤채움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경희 대학교에서 발굴한 대리리 5호분 1곽의 축조 방식과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1곽 내부에는 꺾쇠가 확인되는데 그 위치를 근거로 추정해본 나무 덧널 무덤의 크기는 길이 310㎝, 너비 150㎝이다.

2곽의 주곽은 반지하식의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으로 주곽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N₋100°₋E이다. 부곽은 주곽 남쪽 장벽의 남쪽 50㎝ 떨어진 곳에 축조되었다. 주곽은 회갈색 구 지표를 정지한 후, 560×250×70㎝ 크기의 장방형 묘광을 굴착하여 바닥에는 강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마련하고 그 위에 나무 덧널 무덤을 설치한 후 나무 덧널 무덤과 묘광 사이에 다시 천석으로 뒤채움하였다. 이후 나무널 위에 천석을 쌓고 부곽과 함께 분구를 성토하였다.

부곽은 길이 530㎝, 너비 200㎝, 깊이 50㎝의 장방형 묘광을 구축하고 그 내부에 두께 10~15㎝ 정도의 각재(角材)를 사용해 나무 덧널 무덤을 설치하였다.

전반적으로 주곽에서는 금제 귀걸이·세잎 고리 자루 큰칼[三葉環頭大刀]·은제 허리띠 등 위세품이 주로 출토되었고, 부곽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류와 철기류만 출토되었다. 이처럼 주곽과 부곽이 나란히 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구의 구조와 유물의 종류가 다른 것은 양 피장자의 관계에서 주목된다. 위세품(威勢品)과 더불어 2곽 부곽에서 다량의 껴묻거리[副葬品] 및 순장자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지역 지배 계층의 묘제로 판단된다.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이라는 묘곽의 구조는 경주 지역 지배 계층에서 주로 채용된 독특한 구조로 경주 지역의 신라 중앙 지배 계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세품을 제외한 말갖춤·재갈 등의 마구류는 재지적이며, 토기 자료로서 이른바 의성 양식 토기들이 대부분인 점을 볼 때 재지적 성격도 상당수 지니고 있다.

3호분의 조영 시기는 출토된 토기 자료를 중심으로 볼 때 탑리리 고분 1곽과 비슷하거나 조금 늦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대체로 5세기 중엽에서 5세기 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3. 학미리 고분군

1호 굴식 돌방 무덤은 분구 지름 16~17m, 높이 3.2m이며 돌방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현실은 왼쪽 벽의 길이는 494㎝이며, 오른쪽 벽의 길이는 480㎝, 뒷벽의 너비는 275㎝, 전벽(前壁)의 너비는 283㎝이다.

연도의 연문부 높이는 124㎝, 연문부 너비는 120㎝, 왼쪽 벽 길이는 220㎝, 오른쪽 벽 길이 360㎝이다. 유구의 장축 방향은 N₋10°₋W로 입구는 남향이다. 현실의 천장은 네 벽이 급격하게 내경(內頃)하고 천장석 4매를 덮은 평천장으로 네 벽 모서리를 대형 판상 괴석을 이용하여 모죽임을 하였다. 돌방은 분구의 성토와 연동하여 여러 단계로 나누어 쌓았다. 시상은 3회에 걸쳐 구축되었으며, 1차 시상은 현실 뒷벽에 나란히 붙여 만들었고, 2차와 3차 시상은 연도부를 중심으로 좌우 장벽에 붙여 장축 길이 방향으로 만들었다. 1호 굴식돌방묘는 3기의 고분 가운데 중심 고분으로 현실의 구조와 시상 구조 및 배치에서 재지적인 앞트기식 돌방과 고구려 굴식 돌방묘의 구축 기법이 결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호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은 분구가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으나 호석의 범위로 볼 때 동서 6.5m, 남북 6m 정도로 추정된다. 주축 방향은 N₋7°₋E이다. 나무 덧널 무덤은 길이 270㎝, 너비 92~110㎝, 잔존 높이 약 60㎝ 정도로 북쪽보다 남쪽의 너비가 넓은 장방형이다.

3호 구덩식 돌덧널 무덤의 경우 호석의 범위를 통해 추정되는 분구의 지름은 7m 정도이다. 평면 장방형으로 주축 방향은 N₋78°₋W이다. 돌덧널 규모는 길이 285㎝, 너비 125㎝, 잔존 깊이 103㎝이다. 돌덧널의 바닥은 특별한 시설 없이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 구덩식 돌덧널은 방향이 1호 굴식 돌방을 향하고 있는 점, 돌 덧널 중앙이 시신의 매장 공간이 아니라 유물 부장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1호 굴식 돌방의 껴묻거리 공간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학미리 1호인 굴식 돌방 무덤의 최초 피장자는 생전 경주의 지배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소백산맥 이북의 백제, 고구려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외래 문물을 접한 세력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

의성 금성산 고분군을 대별하는 탑리리 고분군, 대리리 고분군, 학미리 고분군으로 나누어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탑리리 고분군은 하나의 봉토분 내에 5개의 묘곽이 배치되었고, 묘곽 구조는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과 변형 돌무지 나무 덧널 무덤이다. 묘곽 내에서는 금동관, 금동제 관식, 은제 허리띠, 금동 신발, 금제 귀걸이 등의 장신구류와 각종 무기류, 마구류, 토기류가 출토 되었고, 2개의 묘곽에서는 무덤 주인 외 순장자의 인골이 안치되었다.

2호분은 선대(先代) 봉토에 후대(後代) 봉토가 전체를 감싸 하나의 봉토를 이루고 있으며, 2개의 매장 주체부와 배장묘(配葬墓)로 보이는 나무 덧널 무덤, 제사 유구(祭祀遺構) 등이 축조되었다. 매장 주체부는 주·부곽식 구조이며, 무덤의 주인 외 1~4인의 순장자(殉葬者)가 안치되었다. 유물은 탑리리 고분과 마찬가지로 금동관, 은제 허리띠, 금동 신발, 금제 귀걸이 등 장신구류와 금동제 마구류, 다량의 토기류가 부장되었다. 이 고분의 피장자는 조문국(召文國)을 대표하는 수장묘(首將墓)로 추정된다.

대리리 고분군의 1곽에 안치된 피장자는 치아, 다리뼈 흔적 일부와 금제 굵은 고리 귀걸이, 유리제 목걸이를 착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서쪽에 안치된 피장자는 다리뼈 흔적 일부와 금제 굵은고리 귀걸이를 착장한 상태였다. 유물의 경우 토기류는 양 단벽 쪽에, 장신구는 유구 중앙부에 부장하였다.

2곽 유물은 토기류, 금동관, 은제 허리띠, 세잎 고리 자루 큰칼[三葉環頭大刀], 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 중 금동관은 북 장벽을 따라 눕혀져 있는 소형 통모양 그릇 받침과 굽달린 항아리 사이에서 소형 그릇 받침을 따라 길게 펼쳐져 출토되었다. 금동관은 잔존 길이 40㎝, 너비 2.5㎝인 대륜(大輪)에 삼각 톱날 무늬[三角鉅齒文]의 주연(周緣)을 따라 점렬문(點列文)이 시문되었고, 원형의 달개[瓔珞]일부가 확인되었다. 피장자의 허리 부근에서 은제 허리띠와 동지금장(銅地金裝)의 세잎 고리 자루 큰칼이 착장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학미리 고분 1호 유물의 출토 위치는 분구 및 주변과 현실 내로 구분된다. 전자에서는 목짧은 항아리와 도장 무늬 그릇·바리 모양 그릇 받침이 출토되었으며, 후자에서는 연도 입구부 가까운 바닥에서 목긴 항아리 아가리부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심엽형 허리띠 장식과 큰칼·청동제 팔각형 방울·띠고리·철솥 등이다.

학미리 고분 2호 껴묻거리는 나무 덧널 무덤 중앙부의 약간 북쪽에서 청동제 역심엽형 허리띠 장식 14점이 출토되었으며, 북쪽 부장 공간에는 굽다리 접시류·손칼·쇠도끼·쇠화살촉·쇠낫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나무 덧널 무덤의 가장자리에서 꺾쇠가 확인되었다.

학미리 고분 3호 껴묻거리는 출토 위치에 따라 분구 부장과 돌덧널 내 부장으로 구분된다. 분구 상에서는 서쪽 단벽 뒤쪽에서 그릇 받침의 아가리편과 토기편을 비롯하여 각 단벽 쪽에서 쇠화살촉과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돌덧널 내에서는 토기류, 금속류 등이 부장되었다. 토기류는 주로 토기 뚜껑 및 굽다리 접시·굽다리 항아리·목짧은 항아리 등이며 금속류는 말갖춤류·무구류·공구류 등으로 다양하다.

토기는 공반된 경주 양식 토기가 경주의 호우총(壺衧塚)과 월성로 가-18호, 창녕 계성리 고분군 Ⅲ-1호묘, 상주 병성동 고분군 27호묘 껴묻거리들과 유사하다.

1호 앞트기식 돌방은 6세기 전엽에 처음 구축된 이후 한 세대 이내의 시차를 두고 추가장(追加葬)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외 큰칼과 허리띠 장식 등의 위세품들은 경주 지역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으며, 세잎 고리 자루 큰칼[三葉環頭大刀]과 재갈, 호등(壺鐙)과 같은 유물의 경우 백제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현황]

1998년 4월 13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4월 1일 사적 제555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특히 대리리 고분군 일대의 대형 고분군 기저부 봉토 조사 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정비하였으며, ‘조문국 사적지’라는 입간판과 도로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일반 방문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으며, 전시관도 만들어 관람의 편의를 돕고 있다. 특히 2013년 4월 개관한 군립 의성 조문국 박물관은 발굴 유물과 기증 유물 등을 전시하여 의성의 고토인 조문국을 조명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의성 금성산 고분군은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 있는 곳은 조문국의 도읍지로 추정된다. 조문국에 대한 문헌 기록은 매우 소략하여 그 역사의 복원이 어렵기 때문에 고고학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주목되는 것이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은 5~6세기대 의성 지역 지방 세력의 실태 파악 및 사회 구조를 알기 위해서나 의성 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인 조문국 역사의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지** 의성 금성면 고분군 (義城 金城面 古墳群)
2020.04.01. 사적 제55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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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내용은 향후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겠습니다.
2020.07.18
정** 항목중 고분군의분포및범위, 현황내용중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되어 있는데 정식명칭은 경상북도 지방기념물로 정정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6.24
정** 메인화면 금성산고분군 소개내용중에 ..... 지정되었다. 의성군 금성산일대에 200여 기의 고분이로 되어 잇는데
지정되었다.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일대에 200여 기의 고분으로 정정 바람.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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