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373
한자 龍谷里-多仁面-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마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곡동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1㎢
가구수 84가구
인구(남, 여) 143명[남자 58명, 여자 85명]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하면서 경상북도 비안군 현내면의 반용동과 우곡동의 이름을 따서 용곡동이라 하였다.

동동(東洞)은 고려 말 밀성 고을이 현재 양서 2리에 위치였는데 밀성 마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용(蟠龍)은 조선 후기 광해군 때 정변으로 좌승지 김진수가 도피처를 찾아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풍양면 경계 섬바산 기슭에 길게 펼쳐 있는 이 마을을 보고 정착하였다. 마을의 형체가 용이 서려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을 반용(蟠龍)이라 지었다 한다. 자연 마을 금곡(金谷)은 소[牛]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쇠골[牛谷]로 불려 왔으나 시간이 흘러 소를 쇠[金]로 잘못 알아 쇠골[金谷]로 부르다가 금곡(金谷)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경상북도 비안군 현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답곡동, 우곡동, 동동, 반용동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곡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1225호에 의해 용곡동을 용곡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대흥산 끝자락 부분이 마을 서부를 감싸고 있으며, 동쪽으로 형성된 산기슭에 마을들이 입지하고 있다. 마을 앞에 낙동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

용곡리다인면 북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3.1㎢이며, 총 84가구에 143명[남자 58명, 여자 8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봉정리,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흔효리와 경계를 하고, 남쪽으로는 다인면 양서리,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동동, 반용, 금곡이 있다.

마을 남쪽과 북쪽으로 국도 28호선이 지나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예천군으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봉양면으로 연결된다. 농촌 마을로서 주로 벼농사를 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남평 문씨(南平 文氏) 집안의 세 부녀를 기리는 삼부녀 정렬비(三婦女貞烈碑)가 있다. 문경제의 처 남양 홍씨(南陽 洪氏), 아들 문응주의 처 함양 여씨, 아들 문명주(文命周)의 딸 등 세 부녀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몸을 더럽혔다며, 낙동강에 모두 빠져 죽어 조정에서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려비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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