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가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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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된 가상동·가중동·가하동과 계산동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산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인 고바우는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이 곳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며, 그 후 산 아래 냇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계산(溪山)이라 불렸다. 들감 마을은 들을 낀 아름다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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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가음면의 북쪽에는 날아가는 봉황의 형상을 한 비봉산(飛鳳山)이 있는데, 어느 날 산 아래로 봉황이 날아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 아름다울 가(佳), 소리 음(音) 자를 써서 가음이라 하였다 한다. 일설로는 면의 남동쪽에 있는 선암산(船岩山)을 주봉으로 하여 삼천리 산이 동서로 가로 지른 것이 여자가 가야금을 튕기면서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그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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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일리(開日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개일(開日)에서 나온 명칭이다. 원래 골이 넓다고 개곡(開谷)이라 부르다가, 그 후 개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약 400년 전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산 너머 산운리와는 달리 항상 구름이 걷혀 있어, 개일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의성군 산운면 개일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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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와 군위군 의흥면 신덕리에 걸쳐 있는 산. 과거 천지가 개벽할 때에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찼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암산에 배 모양의 바위만 보였다고 하여 이 산을 선암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선암산은 뱀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산은 암석의 노출이 많은 돌산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여름철에 뱀을 잡는 땅꾼들이 이 산을 찾아와 많은 뱀을 잡아갔다. 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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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정리(水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수정(水淨)에서 나온 명칭으로, 마을 뒤 골짜기의 물이 맑아 수정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마을 개척 당시 수정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정동, 소산동, 가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산운면 수정동이 되었다. 1934년 2월 1일 금성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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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陽地)는 조선 세조 때 박성양(朴成陽)의 손자인 박유부(朴有阜)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따라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정하면 후손이 번창한다는 말을 듣고 이웃 마을인 들감[上佳山]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 마을 반대편 동쪽에는 음지 마을이 있는데, 여흥 민씨(驪興閔氏)가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음지 마을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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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리(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배골에서 나온 명칭이다. 배골은 임진왜란 때 중추 부사 오세호와 가족들이 피난해 와서 개척한 마을로서 당시 마을 주변 산에 나무가 적고, 황토가 많아 토현(土峴)이라 불렀으며, 그 후 배나무로 유명하게 되어 배골[梨谷]·이동(梨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자연 마을 홍거리는 1800년경 촌락이 형성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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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리(梨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배골에서 나온 명칭이다. 배골은 임진왜란 때 중추 부사 오세호와 가족들이 피난해 와서 개척한 마을로서 당시 마을 주변 산에 나무가 적고, 황토가 많아 토현(土峴)이라 불렀으며, 그 후 배나무로 유명하게 되어 배골[梨谷]·이동(梨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자연 마을 홍거리는 1800년경 촌락이 형성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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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영오(影午), 호는 화수헌(花樹軒).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후(李仁厚)이며, 아버지는 신녕현감(新寧縣監) 이고(李考)이고,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 李氏)이며, 부인은 함양 박씨(咸陽 朴氏) 경부(慶阜)의 딸이다. 이세남(李世南)[1464~1524]은 경상도 성주에서 태어나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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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마을의 조상이나 수호신을 기리는 대표적인 민간 신앙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60여 개의 마을에서만 마을의 특성에 맞추어 동제를 공동으로 지내고 있다. 현재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그러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동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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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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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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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탑리리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탑리(塔里)에서 나온 명칭으로, 신라 때 세운 5층 석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고련[귀련·고현(古縣)]은 옛날 현청 소재지여서 또는 이곳에 현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위마(位馬)[위매(渭梅)] 마을은 마을 뒤에 천마봉(天馬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생김새가 말이 누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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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와 군위군 고로면 낙전리를 연결하는 고개. 한티재라는 명칭은 포항에서 안계를 향하던 건어물 장수가 이 고개를 넘어가다 힘이 들어 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티재는 남서쪽의 580m 고지와 북동쪽의 590m 고지 사이에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는 355m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분포하는 산지의 높이가 매우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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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현리리(縣里里)는 이 지역에 고을 창고[사창(社倉)]가 있었으므로 창리, 창마, 창말로 부르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현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의 현리동, 중리동, 대동, 용산동, 척화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현리동(縣里洞)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