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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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조선 시대 관료는 과거(科擧)와 음서(蔭敍), 천거(薦擧) 등의 방식을 통해 선발되었다. 과거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대과(大科)[문과(文科)·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뉘며, 능력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음서는 조상의 음덕(蔭德)에 따라 그 자손을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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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敬公) 박의중(朴宜中)이다. 박길상(朴吉祥)[?~?]은 성종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밀직사(密直使)를 지냈다. 밀양 박씨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 입향조로서 내두 마을과 외두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아들 성균 진사 박울(朴蔚)이 비안면으로 유배될 당시 함께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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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모재(茅齋). 중랑장(中郞將) 박윤후(朴允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성양(朴成陽)이고, 아버지는 강계 판관(江界 判官) 박충무(朴沖武)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간(侃)의 딸이고 부인은 영천 최씨(永川 崔氏)이다. 박안부(朴安阜)[?~?]는 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1465년(세조 11) 식년시(式年試)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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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대경(大卿). 아버지는 강계 판관(江界 判官)을 역임한 박충무(朴沖武), 어머니는 권간(權侃)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숙부인 흥양 이씨(興陽 李氏), 할아버지는 정헌공(定憲公) 박성양(朴成陽), 증조할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부인은 이격(李格)의 딸 예안 이씨(禮安 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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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사적(史蹟)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놓은 것. 비(碑)는 기록한 재질에 따라 목비(木碑)·석비(石碑)·철비(鐵碑)로 구분되나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돌에 새긴 석비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는 대부분 기념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조상과 같은 특정 인물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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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계면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곡창 지대로 널려 알려진 지역이다. 들이 넓어 고대부터 촌락이 발달하였다. 면소재지에는 시장이 발달되었고, 서남쪽으로 위천을 끼고 광활한 안계 평야가 곡창을 이루며, 의성군 서부 6개 면의 생활 및 교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촌리·도덕리·봉양리·시안리·안정리·양곡리·용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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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丹北面)에 있었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 대제지는 우리나라 수리 관개 농업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저수지로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위치하였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그 기원이 밝혀지고 있으나, 커다란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초기 국가들이 등장하는 때와 맞물리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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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의성 향교(義城鄕校)는 조선 시대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교육 기관으로, 1394년(태조 3)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건립 이후 많은 유학자를 배향하였으며 향교 내에 대성전을 두어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제향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교육과 제사를 위해 향교를 출입하던 의성의 재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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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고 오국화(吳國華)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세거 성씨. 해주 오씨의 시조는 중국 송(宋)의 학자인 오인유이다. 고려 성종 때 귀화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내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삼았다. 후손 중에 오연총(吳延寵)은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여 이부 상서(吏部 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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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건립되었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조선은 건국과 함께 지배 이념을 불교(佛敎)에서 유교(儒敎)로 교체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체제의 확립과 이념 보급을 위해 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아직 국가의 영향력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교화를 위해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 아래 전국 각지에 향교(鄕校)를 설립하였다. 향교가 처음 설립된 것은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