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신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전해지고 있는 월성위 김한신의 묘와 관련된 설화. 「월성위 묘」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1720~1758]과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의 묘에 얽힌 이야기이다. 삽교천에서 물을 건네주며 살던 마음씨 착한 신천강씨가 있었다. 어느 날 승려를 도와준 신천강씨는 승려로부터 조상 묘에...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전해지고 있는 화순옹주와 월성위 김한신 묘, 그리고 왕자지에 얽힌 이야기. 「화순옹주」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와 남편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1720~1758]의 묘에 얽혀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화순옹주와 월성위의 묘를 조성할 때 묘지 아래쪽에 왕자지(王子池)라는 연...
-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한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이거 성씨. 경주김씨(慶州金氏)의 기원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에서 시작한다. 김알지는 서기 65년(탈해왕 9) 굴성 서편 계림에서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금궤에서 태어났다. 탈해왕은 기뻐하며 성을 김으로 하사하여 경주김씨가 시작되었다. 김알지가 신라 13대 왕에 즉위하면서부터 신라의 왕성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금석학·도서·시문·지리학·음운학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역사적 저술을 남기는 등 조선 후기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여 후대의 서예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정희의...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생가. 김정희 선생 고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생가이다. 증조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1720~1758]이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김정희 선생 고택은 가치를 인정받아 1976년 정화 사업으로 복원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고택 등 김정희와 관련된 유적. 김정희 선생 유적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유적으로 김정희 선생 고택과 그 일대의 유적을 말한다. 김정희 선생 고택, 월성위 김한신묘, 화순옹주 홍문, 예산 용궁리 백송, 김정희묘가 있으며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화암사 뒤편 자연암반에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새긴 암각문.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암사 뒤편의 병풍바위라고 불리는 자연암반에 김정희가 새긴 암각문으로 총 3점이 전한다. 화암사는 원래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이 세운 경주김씨 집안의 원찰이다.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부마이자 문신. 김한신(金漢藎)[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아 집[지금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아버지의 묘소를 짓고, 경주김씨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김한신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유보(幼...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
충청남도 예산군을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학자로서 업적과 기록, 유적 등을 남긴 인물. 예산군은 많은 문인과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자암(自庵) 김구(金絿)[1488~1534]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예가이고,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유명한 현상벽(玄尙璧)·한홍조(韓弘祚)[1681~1712]·윤봉구(尹鳳九)[168...
-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함께 농민층을 지배하였다. 예산 지역의 세거 성씨는 크게 토착 성씨와 이거 성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토성 이족 집단은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있어서 예산 지역의 유력한 재지 세력으로, 1432년...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조선 초기의 관아 건축물. 예산 대흥 동헌 및 아문은 조선시대 대흥현의 현청(縣廳)인 대흥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동헌(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며, 아문은 대흥동헌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예산 대흥 동헌 및 아문은 예산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다. 1407년[태종 7] 창건하였으며, 1914년 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월성위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월성위 김한신 묘는 월성위 김한신(金漢藎)[1720~1758]과 조선시대 왕실의 유일한 열녀로 알려진 부인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를 합장한 묘이다.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예산에 경주김씨 가문의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한 인물...
-
김정희는 예산에서 태어나 추사체를 창조한 조선 후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뛰어난 학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조선 후기 예산에서 출생하여 추사체라는 자신만의 서체를 창조한 예술가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이다. 김정희는 1786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나 1856년 말년에는 과천에서 생활하다 사망하였다....
-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해 힘쓴 충신, 삼강의 덕목을 잘 지킨 효자, 열녀를 통틀어 일컫는 말. 충효열은 충신, 효자, 열녀를 일컫는 말로 삼강의 도리를 잘 지킨 이들을 가리킨다.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군위신강(君爲臣綱)의 예를 다한 신하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위기인 왜란과 호란 때 활약한 인물들이 충신 또는...
-
조선 후기 예산에 묘소와 열녀문이 세워진 옹주.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는 영조의 서녀로, 경주김씨 가문의 김한신(金漢藎)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음식을 끊고 14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로,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정절을 기리는 홍문과 능원이 조성되어 있다. 화순옹주는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정...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순옹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열녀문. 화순옹주 홍문은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1783년(정조 7) 정조의 명으로 용궁리 어귀에 세운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예산에 가문의 원찰을 두었던 월성위 김한신(金漢藎)[1720~1758]의 처이며, 조선 왕실 내 유일한 열녀로 알려져 있다. 화순옹...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사찰. 화암사는 경주김씨의 원당 사찰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인 김한신(金漢藎)[1720~1758]이 1752년(영조 28)에 중건하였으며, 영조가 절의 이름을 화암사(華岩寺)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헌종 대에 다시 훼손되자 추사 김정희 일가가 다시 중건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