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E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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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현 |
덕양에 장이 개설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터가 해방 이후에도 존속했다. 오일장은 1·6, 2·7, 3·8, 4·9, 5·10과 같이 매월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개시되는 정기시의 성격을 가졌다. 덕양장도 열흘에 두 번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덕양의 오일장이 일회적·불규칙적 시장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오일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아 덕양은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양장은 3일과 8일에 개장되었다. 덕양장은 도심지에 있는 시장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4일과 9일에 개장하는 여수장과는 개장 날짜가 달랐기 때문에 소라면 주민만 아니라 여수 사람들도 이용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에서는 한우 사육과 축산 장려 정책을 펼치게 되고, 마침 여수시장에 가축시장이 없어지는 바람에 가축들이 덕양장으로 몰리게 되면서 덕양장터는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덕양장이 잘 될 때에는 이틀에 한 번씩 개장되기도 하였다. 이때가 덕양장터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고 덕양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덕양장이 개장하는 날이면 공산품이나 일용품은 차지하더라도 여수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농산물과 가축들은 덕양장에 있었다. 소 거래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화물차에 싣고 온 소들의 우는 소리가 가축시장의 시작을 알렸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소 거래는 오전이면 거의 끝나고 이때부터 일반 장터가 개장되어 오후 3시까지 이어졌다. 덕양장이 위축되면서부터 끝나는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1998년 4월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통합되면서 여수반도가 행정구역상 단일권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따라 거리에 관계없이 버스 요금이 균등하게 되어버렸다. 소라면을 비롯하여 화양면과 율촌면 사람들이 시내버스 요금으로 여수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농촌사람들은 덕양장에 나와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보다는 바로 여수로 빠져버리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교통이 발달해 아무리 궁벽한 농촌 지역이라도 웬만하면 버스가 안 들어가는 곳이 없어 덕양시장은 날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태껏 덕양시장의 명맥을 그런대로 유지시켜 주고 있던 가축시장도 영농 기계화 현상으로 안 키우는 집이 많고, 한 농장에서 소를 수십 마리씩 대량으로 사육하여 도축업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옛날같이 우시장이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됨에 따라 이것 또한 쇠퇴를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었다.
오일장의 쇠락은 덕양상가에 바로 불경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장이 개설된 날이면 식당·잡화상·농약상·건재상 등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장이 쇠락하게 되자 거래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덕양 내고장발전추진위원회가 옛날의 오일장터를 활성화해보기 위해서 장터에서 영업중인 곱창 식당들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2002년부터 곱창 축제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10월 셋째 주에 개최하여 3일 동안 열렸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05년 4회를 마지막으로 그 다음해로 이어지지 못했다.
덕양장의 광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옛 장터의 모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여수시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2008년 초에 덕양장터에 장옥(場屋)과 현대식 화장실을 지어 놓았다. 그러나 장터에는 장보러 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장옥 안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덕양장터가 왜 쇠퇴했는지 물어보았더니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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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장터 신축 장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