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D01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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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무성 |
애양원은 의지할 데 없는 병든 자들을 자신의 가족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 보살핀다. 애양원은 낯선 외국인들이 치료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까지도 배려하는 박애 정신의 산실로서 기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애양원과 관련된 마을들은 환자, 특히 일반인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접촉을 꺼리던 나환자 등 소외 계층의 공동체로서 자연스레 발생되었다.
도성마을은 1975년 토플이 원장으로 재직할 때 애양병원을 중심으로 한 400,000㎡에 달하는 터에 숙소와 작업장, 창고, 축사 등을 지어 생활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소외 계층인 한센병 환자들의 자립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코자 집단 농장 형태의 도성농원을 만들었다. 도성은 토플의 한국식 이름인 도성래에서 따온 것이다.
이때 애양원은 병원과 사회복지법인으로 분리되어 도성농원에 206명이 정착하였고 애양원에 250명이 남게 되었다. 정착자들에게는 대지와 밭으로 가구당 1652.9㎡(500평)씩 배당하였다. 토지는 1975년 이전부터 약간씩 불하되어 왔고 여기에 마늘과 양파 등 채소 농사를 지어왔으나 이때의 대규모 정착 이후 축산 농가가 급속히 늘어나 축산단지가 되었다. 도성조합이라는 단일 축산 조합으로 운영되다가 1986년 도성조합은 양돈 농가 중심으로 남게 되고 양계 농가는 분리하여 우리조합을 만들었다.
애양원은 초기의 어려움을 멸사봉공 정신으로 극복하였다. 이는 헌신적인 선교사들과 이들과 뜻으로 결합된 한국인 목회자들이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일로 감싸 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뒷받침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사람이 희망’임을 이들 공동체가 여실히 확인시켜주고 있다. 애양원 아니 그 모태인 광주 시절까지 초기에 뜻을 모았던 그 얼들이 계속 전승해 옴으로써 선지자들이 심었던 나무들이 그 후예들에게 속이지 않고 열매를 제공해주고 있다.
자연의 법칙이 결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애양원의 80년 넘은 역사 흐름 속에서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무릇 모든 일에는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그 예측이 가능해진다. 여수라는 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그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간의 범위를 초월하여 공감대를 널리 형성시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