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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총각들의 뱃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20404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남녀 간에 구분이 있는 유교질서가 아직 남아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유습은 도시보다는 농어촌 지역에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서도마을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처녀 총각들은 외부와의 교류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육지와 거리가 멀고 교류 범위가 거문도라는 섬의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도마을의 연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대부분이 거문도 출신인 것으로 보아서는 거문도 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 배를 타고 서도마을을 벗어나더라도 거문도 내에는 변촌, 덕촌, 고도, 유촌 마을뿐이었으며 이 마을들은 서도마을과 지연, 혈연, 학연 등으로 얽혀져 있다. 그래서 이곳의 처녀 총각들은 결혼 전에 공개적인 만남이나 교류를 한다는 것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서도마을의 처녀 총각들은 마을사람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사람들의 시선까지 의식해야 했다. 처녀 총각들은 마을 행사를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1970년대 무렵이면 결혼 풍습이 선도 보지 않고 양가 부모가 신랑 신부를 결정하던 시기가 지났던 때였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처녀 총각들이 교류하는 것이 허용되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는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한밤중에 남녀가 배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당시 이러한 만남은 결혼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서도에서는 배에서 남녀가 만나서 노는 것을 한자식 표현으로 ‘선유(船遊)’라고 한다. 선유를 명확하게 표현을 한다면 ‘교제’에 가깝다. 총각들은 선유할 대상을 찾으러 어두운 밤에 가까운 변촌이나 인근 마을로 배를 타고 간다. 그곳의 청년들이 서도 청년들이 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을에 못 들어오게 막아 내기도 하고 서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반대로 인근 마을의 청년들이 서도마을에 들어오게 되면 서도마을 청년이 접근을 막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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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배

금년(2008) 65세인 김순심 할머니는 선유를 통해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였다. 김 할머니는, “우리 남편은 변촌마을 사람인데 밤에 나를 만나러 배를 타고 옵니다. 집에서 배 엔진소리만 들어 보아도 우리 남편이 타고 오는 배인지 금방 알 수 있지요. 우리 남편이 타고 오는 배의 엔진소리가 다른 배와는 어딘가 다르거든요.”라고 하며 선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처녀들은 부모님께 잠깐 바닷가에 바람 쐬러 간다고 하던지 옆집에 간다는 핑계 아니면 모르게 외출을 해야 했다.(김순심, 65, 서도리 820-2)

한밤중에 마을 앞바다에서 처녀와 총각의 뱃놀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섬마을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풍습이었다. 이러한 남녀 간의 선유는 통혼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서도마을의 처녀 총각들이 서도마을 또는 다른 마을 처녀 총각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남녀 간의 뱃놀이도 학생 시절부터 일찍이 여수 등 도시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서서히 선유의 풍습은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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