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B0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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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현 |
지금은 사라진 노동 관행 중의 하나였으나 서도마을에는 소매 품앗이란 것이 있었다. 품앗이란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로, 일시적으로 집중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어촌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 노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농촌 지역에서의 모내기, 김매기, 밭갈이, 어로 활동 등은 이웃간에 품앗이를 통해서 일손을 해결하는 것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곳 서도마을에는 논농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모내기 같은 품앗이가 없지만 밭 경작을 통하여 식량을 충당해야 했다. 서도에서의 밭농사는 육지의 논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생업 중의 하나였다. 각 농가에서는 논농사처럼 매년 거름용 퇴비를 준비해야 했으며, 볏짚을 구하기가 어려운 이곳에서는 봄에 마을 인근의 산에서 억새풀의 일종인 몰을 베어다 단을 쌓아 올리고 비가 새지 않도록 단 위에 이엉을 엮어 보관하였다. 이 퇴비는 보리 파종 무렵에 밑거름으로 사용되었다.
어로 활동을 함께 하는 농가에서는 남자의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대부분 서도의 농가에서는 거름 채취가 쉽고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화장실에 규모가 큰 분뇨통을 설치하는 것이었다.(이대춘, 73, 전서도리장)
각 농가의 화장실에 있는 분뇨는 가을보리 파종이 끝나고 양력 11월경인 입동 전후에 보리밭의 웃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밭에 거름을 뿌릴 때가 되면 마을에서 떨어진 밭으로 분뇨를 날라야만 했다. 이곳의 남성들은 고기잡이와 어로 준비에 매우 바쁘기 때문에 밭으로 분뇨를 나르고 뿌리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여성 혼자서 나르기에는 며칠이 걸려서 일시에 거름 줄 시기를 놓칠 수가 있었다.
마을 여성들은 여럿이서 분뇨를 나르고 거름을 주는 것을 품앗이로 해결하였는데 이 마을에서는 이것을 ‘소매 품앗이’라고 한다. 보통 10여 명이 함께 소매 품앗이를 하는데 여성들은 나무로 만든 소매통에 분뇨를 담아 머리에 이고 밭까지 운반해야 했다. 마을에서 밭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가파르기 때문에 분뇨를 운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밭으로 가는 길은 좁아서 부녀자들이 분뇨를 이고 가는 모습은 반드시 한 줄이었다. 멀리서 바라다보면 마치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분뇨를 나르는 부녀자들은 가파른 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머리에 얹은 소매통이 엎어지게 되면서 입고 있던 옷과 몸에는 분뇨를 온통 덮어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섬마을의 소매 품앗이는 여성으로서는 매우 고된 노동이었지만 마을 부녀자의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하나의 미풍양속이었다.
이러한 소매 품앗이도 19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쌀 생산은 증대하고 보리 소비는 감소함에 따라 서도마을에서는 보리를 경작하는 농가가 줄어들게 되었고, 대체 작물의 등장, 퇴비나 분뇨 대신에 간편한 비료 보급 등으로 인하여 차츰 사라져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김순심, 65, 서도리 8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