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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지에 작지가 사라지고 있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10305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서도리마을의 옛 이름은 ‘장작리(長作里)’ 또는 ‘장촌(長村)’이라 하였다. 장작리는 마을 앞 해변이 긴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진작지’라고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부르게 된 마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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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지

1899년 돌산군수 서병수가 편찬한 『여산지』에는 마을 이름을 장작리로 표기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는 마을 이름을 지금의 서도리로 바꾸게 되었으니 장작리와 함께 전해 오는 마을 이름인 장촌은 그 이전의 이름이나 장작리와 함께 사용한 마을 이름으로 보인다.

지형적 특징으로 마을 이름까지 된 긴 자갈밭 ‘진작지’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1㎞의 해안으로 동도서도, 고도 세 섬이 감싸 안은 거문도의 내해를 접하고 있다. 진작지의 남쪽은 썰물이 되면 하얀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이 드러나게 된다. 해변의 모래는 부드럽고 입자가 고운 작은 모래지만 바닷물과 함께 다져져서 해수욕장의 모래처럼 발이 푹푹 빠지지 않는다. 이런 모래 덕에 일제강점기에는 비행기가 이곳 모래밭에 착륙을 하기도 했다. 진작지의 남쪽 하얀 모래가 많은 지역을 ‘뱃골’이라 하였고, 북쪽 작은 자갈돌이 많은 해변을 ‘돌팽이’라 하여 남쪽과 북쪽을 구분하는 작은 마을 이름을 따로 부르기도 했다.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뱃골과 돌팽이마을로 나뉘어 남녀노소 대부분이 함께 참여하는 대형 줄다리기가 진작지에서 열렸는데 이런 줄다리기는 거문도의 대부분 마을에서 열리던 대보름 놀이의 하나였다.

1970년대가 되면서 서도의 ‘진작지’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거문도서도에 있는 덕촌, 변촌, 서도리마을을 연결하는 도로가 확장되고 마을 해변에는 도로와 함께 호안공사가 진행되면서 진작지 해변을 잠식하게 되었다. 문제는 도로의 축대를 수직으로 높게 쌓아 올리게 되자 축대에 부딪힌 파도는 해변 가까이의 자갈과 모래를 조금씩 쓸어가 버리는 현상이 반복되어 ‘짝지’라고 부르는 자갈밭 해변이 매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긴 자갈밭으로 ‘진작지’라는 마을 이름을 가졌던 서도리의 특징이 사라지고 있어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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