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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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澤 |
영어공식명칭 | Kim Sung Tac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초도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종길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김성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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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성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여수군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초도리 |
활동지 | 완도군 - 전라남도 완도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성택(金聖澤)은 1878년(고종 15) 전라남도 여수군 삼산면 초도리[초도]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가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자,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일진 회원을 비롯한 친일 주구배를 처단하며 무너져 가는 국권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김성택은 당시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활동하던 황준성(黃俊聖) 의진에 들어가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9년(순종 3) 음력 5월 4일 김성택은 의병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총기 8정을 휴대하고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의 각 이장들을 주막으로 소집하여 이들로부터 군자금을 거두었다. 이틀 뒤인 6일에도 완도군의 여서도(餘瑞島)에 들어가 동일한 방법으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 일이 알려져서 체포된 김성택은 1910년 11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성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