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3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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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魯植 |
이칭/별칭 | 마도로스 박,용팔이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병은 |
[정의]
전라남도 여수 출신 영화배우.
[개설]
1930년 2월 4일 전남 여수 봉강동 출생으로 서초등학교, 여항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24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악극단에 들어갔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데뷔한 뒤 이듬해 「5인의 해병」을 통해 액션배우로 한국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출현했지만 60년대부터 체육과 출신의 재능을 살린 액션영화의 유명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대는 주연과 연출을 겸한 영화감독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액션영화배우로서 「용팔이」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인기배우의 반열에 우뚝섰다.
액션 배우로 자리를 굳힌 그는 1976년 〈방법대원 용팔이〉, 1983년 〈돌아온 용팔이〉 등의 용팔이 시리즈를 직접 연출하며 액션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다. 유행가도 걸쭉하게 잘 부르고 ‘욱’하는 성질에 제 집 드나들 듯 경찰서를 오가며 집행유예를 많이 당해 〈집행유예〉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삶 자체가 거침없었고, 무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유신 헌법 시행 후, 문예영화가 장려되고, 액션영화가 설 자리를 잃자 그의 거침없음도 세월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와 호쾌한 액션, 독특한 표정연기로 한국영화의 중흥과 쇠퇴를 같이 한 한국영화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활동사항]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에 출연하여 배우가 된 후 「느티나무 있는 언덕」(1958), 「과거를 묻지 마세요」(1959, 안현철), 「피 묻은 대결」(1960),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현금은 내 것이다」(1965), 「카인의 후예」(1967), 「메밀꽃 필 무렵」(1968), 「소장수」(1972) 등 900여 편에 출연했으며, 액션 스타의 자리를 굳혔다.
1970년대에 들어가면서 메가폰도 잡아 「인간 사표를 써라」, 「나」(1971), 「집행유예」(1973), 「하얀 수염」, 「왜?」, 「일생」(1974), 「폭력은 없다」, 「광녀」, 「방범대원 용팔이」(1975),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돌아온 용팔이」(1983) 등 14편을 만들어 내었다. 이 가운데 「폭력은 없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연을 겸했다.
감독 데뷔작인 「인간 사표를 써라」는 신혼 여행 중에 죽은 젊은 커플의 사건 규명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내연 관계와 조국에 대한 배반을 그렸고 「나」는 애인을 뺏기고 청각까지 잃은 사나이가 오랫동안 벼르던 복수를 하게 되지만 그 역시 총에 맞아 쓰러지는 비극적 결말을 담았으며, 「집행유예」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방 신문사의 광고부원으로 채용된 재일동포가 신분이 노출돼 해고된 후 은행 강도가 됐으나 일본 사회의 비인간적 편견이 이런 행위를 만들어 냈다는 변론이 받아들여져 석방, 새출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얀 수염」은 평생을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다가 양로원에 들어온 노인이 잘못을 뉘우친 자식들에 의해 편안한 여생을 누리게 된다는 내용이고, 「왜?」는 얼굴도 모른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가 조총련의 마수에 걸린 처녀가 빠져나오기까지의 사연을 엮었으며, 「광녀」는 탈옥한 은행강도들이 숨겨둔 거액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았다.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는 일제말기 일본군 패잔병들이 사금을 찾아 광산촌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살인과 복수를 그렸고, 「돌아온 용팔이」는 미국에 살던 용팔이가 할머니의 막대한 유산상속 유언이 든 테이프와 국보급 보물을 갖고 귀국하면서 빚어지는 해프닝과 반전의 결말을 담았다.
그의 감독 작품 역시 연기와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액션에 무게를 두었으며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을 중시하였다. 1995년 4월3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저술 및 작품]
생전에 5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280여편에 감독 및 주연을 맡았다. 감독과 주연을 겸한 작품으로 ‘돌아온 용팔이’ 외 11편의 작품이었으며, 주연한 작품은 268여편이다. 자선전으로 은막 43년의 고백을 담은 「뻥까오리 백작」(1995)가 있다.
감독과 주연을 겸한 12편의 작품으로는 「돌아온 용팔이」(1983), 「방범대원 용팔이」(1976),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폭력은 없다」(1975), 「광녀」(1975), 「일생」(1974), 「하얀수염」(1973), 「육군사관학교」(1973), 「집행유예」(1973), 「자크를 채워라」(1972), 「인간사표를 쓰라」(1972), 「나」(1972) 등이 있다.
주연 작품으로는 「잡초들의 봄」(1989), 「돌아온 용팔이」(1983), 「낙조」(1978), 「지옥행열차를 타라, 방법대원용팔이」(1976), 「폭력은 없다」(1975), 「어둠속의 목격자」, 「일생」, 「하얀수염」, 「어둠속의 목격자」(1974), 「오백화」, 「육군사관학교」, 「배따라기」, 「용구와 용팔이」, 「잡초」, 「승부」, 「사나이훈장」, 「늑대들」, 「명동을 떠나면서」, 「집해유예」(1973), 「웃고사는 박서방」, 「일본해적」, 「인생우등생」, 「작크를 채워라」, 「유정삼십년」, 「명동잔혹사」, 「방자와 향단이」, 「사나이 가는 길에」, 「1대 1」, 「아들 딸 찾아 천리길」, 「체포령」, 「남과북의 당신」, 「돌아갈 수없는 고향」, 「며느리」, 「미움에 대하여 소장수」(1972) 등 268편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7년 남도문화제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967년 대종상 남우조연상, 아시아영화재 남우주연상, 1968년 대종상 남우조연상, 196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1972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1973년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