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3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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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昌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개설]
경남 사천시 출신으로 여수에 이주하여 일본에 유학,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의 주치의를 거쳐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대한적십자 총재직 시절 여수에 적십자병원을 유치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여수 야구의 저변확대에 공헌을 하였다.
[활동사항]
손창환의 출생지는 『여수·여천향토지』에는 사천시 삼천포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손창환 묘비에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모가 여수 종포(종화동 돌다리 부근)에 이주하여 고물상을 경영하였다. 15세의 늦은 나이로 여수공립보통학교(여수서초교)에 입학하여 줄곧 급장을 지낼 정도로 성적이 우수하였다. 일본에서 생활 기반을 잡게 된 형을 따라가서 일본에 유학, 게이오대학교 의대를 졸업하였다. 서울 안국동에서 덕수의원을 경영하였고, 정부수립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를 거쳐 1954년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대한적십자 총재직 시절 여수에 적십자병원을 유치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나 그 병원은 현재 철수되고 없다. 여수 야구의 저변확대와 진흥을 위해 보통학교 동창생인 조종수 야구협회장에게 보사부장관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자유당 정권의 각료로서 3.15부정 선거 관련 혐의로 약 1년간 옥고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