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3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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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일제강점기 여수에 정착한 독립유공자.
[개설]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도일, 교토에 살면 심상고등소학교(尋常高等小學校)를 졸업하고 효고현에 있는 제강소에서 일본인의 모욕적 언동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고 조국 광복의 꿈을 키워 오다가 애국지사인 김경원(金京元) 등과 조선독립을 쟁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조선인 징병제 실시 때에 군기 교란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경도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출옥하여 귀국하였다.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활동사항]
본적은 경북 칠곡군으로 1926년생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도일, 교토시[京都市] 흥사군(興謝郡)에 살면서 진죠고등소학교[尋常高等小學校]를 졸업하고 효고현[兵庫縣]에 있는 아마가사키제강소[尼崎製鋼所]에 고용된 바 있으나 일본인의 모욕적 언동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고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독립의 꿈을 키워 오다가 애국지사인 전경원(全京元), 김석용(金碩用), 윤정웅(尹政雄), 김미도(金未度) 등과 접촉하여, 10여 차례 몰래 모임을 갖고 조선 민족에 대한 차별과 압박을 규탄하고 조선독립을 쟁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1942년 8월경 조선인 징병제 실시 때에 항일봉기의 기회로 활용코자 군대 내에 동지를 규합, 군기를 교란시킬 모의를 진행시키고 항일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일경에 체포되어 청력이 감퇴하고 하체마저 온전치 못할 정도로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치안유지법위반혐의로 경도 지방재판소에 이송되어 광복 이후까지 미결수로 남아 있다가, 9월 9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출옥하여 귀국하였다. 여수에 정착하면서 철공소 일을 해오다 교동에 전광공업사(철공소)를 운영하였다.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