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2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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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鐵所 |
영어의미역 | Iron Works |
분야 |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은일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있었던 제철 제련소.
[개설]
사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으로부터 해안 쪽으로 약 2㎞ 떨어진 현 여수시 봉산동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제철소로 임진왜란 당시 무기 제조 및 병기 공급 창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철광석인 사철은 현재의 진성여자고등학교 아래인 서당산(書堂山)에서 산출하여 사철소로 옮겨와 제련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제철소 폐기물 처리장으로 추정되는 봉산동 3통 3반과 4반 일대의 옛날식 돌담이나 주택 안마당 등에서는 지금도 슬래그(제철의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마을 사람들은 ‘쇠똥’이라 부른다)와 내화돌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 초에 매립된 노강(爐江) 역시 사철소에서 사용한 제철용 용수 저수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질 경우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수군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제철·제련 기술을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사철소와 관련하여 전라좌수영 고지도에는 현 봉산동 일대가 ‘사철(沙鐵)’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지금도 주민들은 이 지역을 ‘새철’이라는 부르고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1592년 2월 3일)에는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의 군관이 왔기에 살대 큰 것과 중간 것 100개와 쇠 50근을 보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는 제련과 관련하여 ‘사철취련장(沙鐵吹鍊匠)이 10명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1986년에 발간된 『문화유적총람』에도 ‘제철지(製鐵址) 봉산동(鳳山洞) 1568~1609년 임진란(壬辰亂) 때 사철(沙鐵)이 생산되어 무기 제작에 사용, 1752년(영조 27)에 절도사(節度使) 정익량(鄭益良)이 사철고(沙鐵庫)를 설치 했다’라는 사철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