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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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麗水縣 |
영어음역 | Yeosu-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개설]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이라 불리던 여수 지방의 이름도, 여수현(麗水縣)·돌산현(突山縣)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麗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昇平郡)[순천]의 속현이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대체로 성종 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서경(西京)과 대도호부(大都護府) 여러 진(鎭)을 제외한 일반 주·부·군·현에는 중앙으로부터 지방관의 상주(常住) 파견이 없었고, 향호로 조직된 반 자치기구에 일임하였다. 단지, 수시로 ‘영유(令有)’·‘조장(租藏)’이라는 조세(租稅) 징수관과 징수된 조세를 중앙으로 전달하는 ‘전운사(轉運使)’ 등을 중앙에서 파견·순회하였을 뿐이었다.
지방에 상주관이 비로소 파견된 것은 983년(성종 2)으로, 12목(牧)을 설치함으로써 지방행정에 대한 통제와 집권화가 본격화되었다. 12목은 양주(楊州)·광주(廣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해주(海州)·황주(黃州)에 설치하였다. 이곳에 상주관인 목사(牧使)를 파견하여 소관 주(州)와 현내(縣內)의 여러 향직(鄕職)을 감독하게 하였다. 전라남도 지방은 나주(羅州)와 승주(昇州)[순천]가 목이 되었는데, 이때 여수·여천은 승주의 관할 아래 있었다.
995년(성종 14) 행정구역의 개편이 단행되어 전국을 4도호부, 10도로 나누는 한편 12주목이 12주 절도사로 바뀌었다. 10도는 관내(關內)·중원(中原)·하남(河南)·강남(江南)·해양(海陽)·영남(嶺南)·영동(嶺東)·산남(山南)·삭방(朔方)·패서(浿西) 등이었다. 전라남도 지역은 해양도(海陽道)에 해당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수 지역은 12주 절도사의 하나였던 승주절도사의 관할로 여수현과 돌산현이 있었다.
[변천]
1018년(현종 9) 다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을 때에는 전국에 4대도호부 8목(광주·충주·청주·진주·상주·전주·나주·황주), 56지주군사(知州軍事), 28진장(鎭將), 20현령(縣令: 목에 직속됨)으로 바뀌었다. 이 개편으로 전라남도 지역은 나주가 8목의 하나가 되었고, 여수현·돌산현은 나주의 승평군에 속하게 되었다.
여수현과 돌산현은 대체로 고려 말까지 계속되었으나, 한동안 돌산현이 폐현되기도 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1350년(충정왕 2)에 처음으로 현령(縣令)을 둠에 따라 순천부와 분리되어 독립 행정단위가 되었다. 이는 1396년(태조 5)까지 47년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