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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례만호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946
한자 內禮萬戶鎭
영어음역 Naeryemanhojin
영어의미역 Naerye Naval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국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여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423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던 수군기지.

[제정경위 및 목적]

1396년 진례만호진이 설립되어 28년간 계속되어 왔으나 1423년(세종 5) 1월 전라감사가 “도내 진례량의 병선을 내례량으로 옮겨 경상도 우수영[거제도]의 서편을 관장하는 남해도, 평산포만호진의 병선과 마주 대하여 봉화로 서로 연락하는 방어선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장계를 조정에 올려 세종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진례만호진을 없애고 내례만호진을 설립하였다.

[관련기록]

내례포의 위치

내례포 위치를 여수지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수시 국동(菊浦)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서에는 전라좌수영은 내례포에 설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례포의 위치는 전라좌수영이 있었던 현재 여수시 중앙동, 군자동, 동문동, 고소동 등, 소위 구항 일대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례포는 며포라는 것이다.

가. 문헌에 보이는 내례포의 위치

1) 『신증동국여지승람』 - 내례포, 부동 사십구리

2) 해군사관학교본 『호좌수영지』 - 가) ‘내례원 재부동팔십오리’

나) ‘내례포장 재부동팔십리재좌수영성내,

3) 『세종실록지리지』(전라도 관방) - ‘내례. 재순천부남며포’

4) 『동국여지승람』 - ‘좌도수군절도사영 재내례포 고유만호’

5) 『승평지』 - ‘좌수영, 재내례포고유만호’

6) 『호남여수읍지』- ‘국포. 서십리내례포구지’

7) 『여수여천발전사』 - ‘내례포[현 국동]로 만호진을 옮겼던 것이다’

8) 『여수·여천향토지』 - ‘국포가 내례포(旀浦)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좌도수군절도사영 재내례포 고유만호]라는 사문으로 보면, 현 여수구항이 행정상 내례포에 속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상 사료를 검토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례포와 해군사관학교본 『호좌수영지』에 실려 있는 가)와 나)의 내례포는 같은 순천부 안에 있기는 하나 좌수영이 설치된 곳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알 수 있다. 내례와 진례라는 지명은 우리나라에 무수히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고유명사이면서 보통명사인 것 같다.

내례포가 좌수영이 있었던 곳이라는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좌수영, 재내례포고유만호’의 기록인데, 해군사관학교본 『호좌수영지』의 ‘내례포장, 재부동팔십리재좌수영성내’는 내례포가 좌수영임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

다음은 내례포가 현재 여수시 국동이라는 사료는 『호남여수읍지』, 『여수여천발전사』, 『여수·여천향토지』인데 해군사관학교본 『호좌수영지』의 ‘내례원, 재부동팔십오리’라는 기록이 국동설을 뒷받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순천부에서 좌수영까지의 거리를 거의 모든 사서에 ‘팔십리’로 적고 있다. 따라서 내례원이 ‘팔십오리’라면 좌수영에서 5리를 더 간다는 것인데, 좌수영에서 5리를 더 가면 국포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의 내례포가 며포라는 기록을 검토하면서 기록을 살펴 보면,

1) 『세종실록지리지』전라도 관방조 - ‘ 내례. 재순천부남며포’

2) 『신증동국여지승람』 - ‘며포, 재부동육십일리’

3) 해군사관학교본 『호좌수영지』 - ‘旀浦, 在府東六十里’

4) 『호남여수읍지』 - ‘며포, 서이십리’, ‘장생포, 서이십리’

5) 『승평지』 - ‘며포, 재부동육십일리’

내례포가 며포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관방조의 ‘내례. 재순천부남며포’의 기록인데, 모든 기록이 며포의 위치를 부에서 육십리 내지는 육십일리 또는 좌수영에서 이십리라고 기록하고 있어 며포는 좌수영이나 국포[국동]의 위치하고는 전혀 다른 장생포와 여수 선소[순천부 선소]의 위치가 된다.

종합적으로 유추하면 내례포는 전라좌수영성이 있는 여수시 중앙동이다.『호남여수읍지』 등 향토자료에서 내례포를 국동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 역시 해군사관학교본 『호남여수읍지』에 보이는 내례원이 좌수영보다 5리가 먼 곳에 있음을 보아 국동임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전라좌수영은 성종 10년 당시에는 내례만호진이 위치했던 국포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전라좌수영의 위치가 현재의 위치로 확정되고 이어 전라좌수영성이 완성되는 성종 21년 10월 무렵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현재의 전라좌수영의 남쪽에 인접한 해안, 즉 여수구항이 내례포로 불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며포와는 별개의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례포는 현 전라좌수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전라좌수영은 아마도 성종 10년 당시에는 내례만호진이 위치했던 며포 즉 국포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전라좌수영의 위치가 현재의 위치로 확정되고 이어 추정이 완성되는 성종 21년 10월 무렵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현재의 전라좌수영의 남쪽에 인접한 해안, 즉 여수구항이 내례포로 불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의의와 평가]

문헌에 나타난 여수와 순천 지역의 거리를 분석해 보면 내례만호진의 위치 또한 여수시 국동이 아니라 여수시 중앙동 전라좌수영성이 있는 포구인 것을 알 수 있다. 전라좌수영이 있던 내례포는 1478년(성종 10년)부터 1895년(고종 32년)까지 417년간 조선의 최전방에서 호국의 간성(干城)으로 그 임무를 수행한 호국의 성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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