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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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國寺應眞堂本尊佛 |
영어의미역 | Buddha Statue of Eungjindang Hall in Heunggu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석 |
성격 | 불상|목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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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나무 |
높이 | 높이 127㎝ |
소장처 | 흥국사 |
소장처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소유자 | 흥국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 대웅전 뒤 응진당에 있는 조성 연대 미상의 본존 불상.
[개설]
응진당이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의 설법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이다. 일명 영산전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유마경』이나 『증일아함경』에 등장하는 제자를 모시는 전각이다. 조선시대에는 흔히 석가모니의 16제자를 모셨기 때문에 응진전이라고 하였다. 500나한을 모시고 있는 곳은 나한전이라고 하였다. 응진당은 수도승에 대한 신앙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응진전은 주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고 자씨미륵보살(慈氏彌勒菩薩)과 제화갈라보살(堤華竭羅菩薩)이 좌우보처(左右補處)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공양하는 일을 나한공(羅漢供)이라고 한다. 규모가 작은 절이나 암자의 이름으로 나한굴(羅漢窟), 나한당(羅漢堂), 나한사(羅漢寺), 나한암(羅漢庵)이라 한 곳이 많다. 그러한 寺庵에서는 물론 부처님과 함께 아라한을 공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법당이다.
『전라도순천부영축산흥국사사적』에 의하며 흥국사 응진당은 1624년 창건되었다.
1753년 경파대사(鏡波大師)에 의해 중수되고 1963년 응봉대사(鷹峰大師)에 의해 중수되었다. 1723년 영준(瑩俊)에 의해 16나한도(총6폭) 총 3종 18화와 영산후불탱 및 응진후불탱이 조성된 기록이 있으나 불상 조성 기록은 없다.
응진당 본존불은 723년 이후 1753년 중수기나 1963년 응진당 중수 시기에 같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형태]
대웅전 본존불과 같은 우견편단에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는 목불이다. 응진당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좌협시는 관세음보살이고 우협시는 대세지보살이다.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머리와 거의 구분되지 않도록 넓고 높게 솟았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반구형의 중간계주가 표현되었으며, 육계 정상에는 작은 반구형의 정상계주를 올렸다.
이마와 머리의 경계선인 발제선은 직선에 가깝다. 호형의 긴 눈썹은 코까지 연결되었다. 눈썹 사이에는 커다란 백호를 돋우었다. 반개한 눈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눈꼬리가 위로 약간 올라갔으며 눈에는 눈동자를 표현하였다. 눈에 비하여 코가 작으며 콧등과 콧방울이 거의 같이해서 코끝을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입술은 비교적 얇으며 살짝다문 모습이어서 부드러워보인다. 가녀린 둥근 턱에 삼도를 넓게 표현하였다. 귀는 아주 크게 목 중앙까지 내려오며 귓불은 약간 외반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오른쪽 팔뚝 전체를 감고 뒤로 돌아갔다.
대의의 가장 자리를 따로 장식하였고 승각기없이 바로 대의를걸친 모습이다. 옷주름은 비교적 간략하게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수인은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중앙에 손등을 대고 손바닥을 위로하여 엄지로 장지의 첫째 마디를 대고 있다. 약지와 소지도 약간 들려졌으나 검지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편 모습이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중앙에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촉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인이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어 존상의 존명이 석가여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좌는 앙련과 복련이 연접되어 있고 중간에 당초문으로 띠를 두룬 연화좌이다.
크기는 주불이 높이 127㎝에 무릎 폭이 66㎝, 보살상은 높이 12㎝에 무릎 폭이 53㎝, 16나한상은 높이 85㎝에 폭이 3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