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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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麗水舊靑年會館 |
영어의미역 | Yeosu Former Youth Assembly Hall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 30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5월 31일 - 여수 구 청년회관 국가등록문화재 제3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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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재지정 |
성격 | 근대건축 |
건립시기/일시 | 1921년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 303 |
소유자 | 여수시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등록문화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역 청년운동의 본거지.
[위치]
여수시 관문동 여수경찰서와 여수엑스포역을 잇는 대로변 우리은행 여수지점(구, 한일은행) 뒤에 있다. 은행 뒤쪽 소로를 끼고 자리를 잡고 있다.
[변천]
전라좌수영성에 ‘덕지’ 혹은 ‘못물동’이라고 부르는 400평~500평 가량의 연못이 있었다. 1930년 이 연못을 메우고 좌수영 밑에 있던 좌청[일명 취방청-당시 우체국으로 쓰이고 있던 기와집]이란 건물을 뜯어서 청년회관을 지었다. 건축 당시 400~500평이나 되는 깊은 연못을 메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회장 정재완(鄭在浣)을 비롯한 회원들이 몸소 땅을 파고 지게로 흙을 날랐다. 가두모금에 나서서 기금을 모으고 회장 정재완은 전답까지 팔아 건축비에 보탰다. 하지만 당초 이들의 힘으로 큰 집을 짓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다 못한 회원들이 사업가 김영준(金英俊)에게 호소하자 선뜻 목돈을 내줘 1930년 말경 준공을 했다.
[형태]
1988년 이전까지는 익공식 2층 기와집이었다. 이후 중건 시 1층은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보수하고 2층은 전통 목조건축물 그대로 두었다. 몇 번의 중건을 거쳐 현재는 1, 2층 모두 콘크리트 건물이다. 현재 콘크리트 건물에 문짝은 한옥 문짝을 그대로 썼다. 1층에는 바깥으로 가운데 크게 계단을 내서 2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현황]
해방 전에는 여수상공회의소로 쓰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대한노총회관, 여수신문기자구락부로도 쓰였으며, 여수시립도서관으로 운영되다 여수시문화원으로도 활용하였다. 얼마 전까지는 여수시립국악단이 사무실 겸 연습 장소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비어 있다.
2002년 5월 31일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31호로 등록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전라좌수영의 건물로는 여수 진남관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운데, 여수 구 청년회관의 2층을 지을 때 좌수영 좌청의 건물 부재를 전용하여 건립했다고 하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