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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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旗痛哭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병호 |
성격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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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19년 3월|1926년 6월 |
발생(시작)장소 | 전라남도 여수 |
관련인물/단체 | 정충섭|전병순|정영민|최봉삼|정용수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고종과 순종의 장례식에 통곡단을 조직하여 참석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64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왕조 제26대 왕에 등극한 고종은 헤이그밀사사건으로 1907년 퇴위하기까지 43년 동안 실로 내우외환이 겹치는 국난 가운데서 초의한식(草衣寒食)으로 편할 날이 없다가 1919년 1월 일본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도는 가운데 서거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의 국장을 앞두고 전국의 백성이 국장에 참여하고자 속속 상경하였다.
[경과]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도 유림대표로 정충섭, 전병순, 정영민, 최봉삼, 정용수 등을 비롯한 일행 42명(여자 6명 포함)이 백기(白旗)를 든 통곡단(痛哭團)을 편성하여 상경하였다. 이것이 1차 백기통곡단(白旗痛哭團) 사건이다.
당시는 서울까지 차편이 없었을 때이므로 이들은 태안환이란 배편으로 부산까지 가서 최봉삼의 아들 최영모가 경영하는 옥천여관에 투숙하고 나서 기차편으로 서울까지 상경하였다. 1926년 6월에는 순종 황제가 서거하자 2차 백기통곡단을 조직하여 상경하였다.
[결과]
고종과 순종의 국장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백기통곡단(白旗痛哭團)을 조직하여 상경함으로써 그때까지 여수 지역 유림을 하시(下視)하던 서울 지역 유림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백기통곡단의 활동을 통하여 여수 지역 주민들의 애국심과 여수 지역 유림의 활동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