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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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aecheol |
이칭/별칭 | 쇠철,사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을 부르던 지명.
[명칭유래]
새철은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에 전해 오는 전래지명으로, 사철소가 있어 사철(沙鐵)이라 부르게 된 것이 새철 또는 쇠철로 그 음이 변하여 전해진 것으로 본다. 사철소는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의 수군 무기를 제작하던 제련소이다.
사철소(沙鐵所)는 조선시대의 전라좌수영의 수군 무기를 제작하던 제련소이다. 봉산동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질 경우,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무기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4백여 년에 이르는 조선 시대 제철·제련 기술 발달사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 사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으로부터 해안 쪽으로 약 2㎞ 떨어진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 일대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필요한 무기 제조와 병기 공급창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특히, 당시 제철소 폐기물 처리장으로 추정되는 봉산동 3통 3반과 4반 일대의 옛날식 돌담이나 주택 안마당 등에서는 지금도 슬래그(제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마을 사람은 쇠똥이라 부른다.)와 내화돌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관련기록]
전라좌수영 고지도에 사철(沙鐵) 이라는 표기가 있고 정부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제철(製鐵) 터 봉산동(鳳山洞)에서 1568~1609년 임진왜란 때 사철이 생산되어 무기 제작에 사용되었고, 1752년(영조 27)에 절도사 정익량(鄭益良)이 사철고(沙鐵庫)를 설치했다.”라고 전하여진다.